▲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유성호
이명박 정부도 난색... 균형재정 플랜 새로 짜야 하나?이한구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 감액과 차입을 통해 마련하되 안 되면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6조 원 증액의 현실적인 방법이 국채 발행뿐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이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부채가 늘어갈 경우 이명박 정부의 균형재정 달성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342조5000억 원으로 4조8000억 원의 적자 편성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적 관례를 내세우며 내년 예산안이 '사실상 균형재정'이라고 강조해 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입주식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원안대로 가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확장적 기조 하에서 경기 대응에 최선을 다해서 작성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올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감액된 금액만큼만 증액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여야는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원안 대비 1조4000억 원가량의 감액에 의견 접근을 본 상태다. 하지만 '박근혜표 예산'으로 정부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여야도 다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정부 방침대로 '감액 범위 내에서의 증액'만으로는 '박근혜표 예산' 반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제출 예산안 감액만으로 부족할 경우 결국 이한구 원내대표 발언처럼 국채 발행까지 해야 한다. 국채 발행은 그만큼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균형재정 플랜을 통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올해 34.0%에서 차차 줄여나가 2015년에는 30% 밑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근혜표 예산' 때문에 이 계획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과거 대선을 치른 해의 예산안 처리는 대부분 선거일 이전에 이뤄졌다. 다만 2007년 17대 대선 때만 당시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을 예산에 반영하자고 주장해서 4천억 원가량을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신에너지 연구기반 구축 예산 10억 원 신설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계획대로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이한구 원내대표처럼 예산안도 통과되기 전에 6조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한 사례는 없었다. 대신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때는 새 정부 출범 후 공약을 총 점검해 취임 1차 연도에 추경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새 사업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 2003년 6월과 10월, 이명박 대통령 때는 2008년 6월 각각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지금은 총체적으로 상황을 재점검하고 재정건전성 같은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내년 2분기쯤에나 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이 더 합리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히려 복지공약 재원조달을 위한 2013년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추경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다시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지금 단계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운 '박근혜표 공약의 신속한 추진'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복지공약 재원 방안 있다더니... 결국 국가 빚으로 충당?"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증액해 적자 예산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강조했던 약속과도 위배된다. 박 당선인의 공약은 5년간 131조4천억 원 규모의 재원이 소요된다. 그는 이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 세제 개편과 세입 확충, 복지 행정 개혁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안에 국채 발행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평소 '신뢰'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웠던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말을 뒤집은 셈이다. 게다가 새 정부 시작부터 빚을 내는 것은 향후 다른 공약 실천을 위해서도 빚을 내는 길을 터주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은 대선 후보 TV토론 등에서 정부 씀씀이를 줄이고, 세수 확대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당선되자마자 국채부터 발행해 재정적자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도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증세 등의 추가부담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며 "그런데 재정 개혁 없이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것은 대선 공약을 전면 위반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은 복지보다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을 더 무서워한다"며 "그럼에도 국채 발행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복지공약을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나, 재원 방안이 불투명하고 결함이 있는 자신의 복지공약을 물타기 하기 위한 말 바꾸기가 시작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이미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는데, 너무 일찍 드러났다. 앞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말하기 어려우니까, 최고 실세인 이한구 원내대표가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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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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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원 나랏빚 내서 복지? 오만한 점령군 같은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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