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를 보면서 소크라테스를 떠올린 이유

[주장] 따뜻한 진보를 기대하며

등록 2012.12.24 15:56수정 2012.12.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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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났다. 이명박 정부가 많은 실정을 했고,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국민은 정권 교체를 선택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 원인과 야당의 패배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 중 언론의 분석 결과에도 등장하고, 주변에서 체감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다. 이정희 후보가 대선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를 시쳇말로 '싸가지 없게' 몰아세웠기 때문에 여론이 확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과 분석 결과들을 접하고 나서 내 머리 속에는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떠올랐다. 대한민국 선거판 분석에 왜 뜬금없이 케케묵은 교과서 속 사람들을 끌어다 붙이느냐고 핀잔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 서양과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이 떠오른 것은 작년 한해 학생들과 이들의 저작을 함께 읽으며 나도 크게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정말 재수없어요!

내가 읽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서는 <국가론>과 <소크라테스의 변명> 단 두 권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대학교 4학년 때 '서양 사상사' 교수님이 토론을 위해 읽어오라고 했기 때문에 봤다. 서양 철학사를 접할 때마다 위대한 사상가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받는 사람이기에 호기심도 조금은 갖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짧은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대체 왜 이 사람을 위대한 철학자라고 숭배하는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는 소크라테스다"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말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세상에 현명하다고 이름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토론을 벌였다. 자신이 신탁대로 정말 현명한지 아닌지 검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교수님은 신의 말씀이라도 검증해 보는 이런 태도는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훌륭한 태도라고 하셨다. 이 견해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검증하기 위해 벌인 토론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보면 이런 검증 과정에서 현명하다고 이름났던 사람들이 대중 앞에서 어떤 꼴을 당했을지 짐작할만한 장면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소한 이를 불러 그에게 반대 신문을 한다. 'A=B 이고 B=C이니 A=C가 맞는가?'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고소자들도 "그렇다"라며 그의 말에 따라간다. 그런데,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놀라운 결과가 도출된다. 분명 "이것은 하얗다"로 출발했는데, 결론은 "이것은 까맣다"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정말 말을 잘 하는구나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저 고소자들 정말 속 터지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현명하다고 이름난 이들이 한번 소크라테스와 토론을 하고 나면 왜 그와 원수가 되고, 그를 싫어하게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똑똑한 소크라테스의 완벽한 논리, 말 재주, 말이 막힐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의 토론 방식인 문답법으로 인해 현명한 이들은 토론 도중 말이 막혔을 것이고, 대중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말 상대의 감정은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논어>가 말하는 동양의 정서, 겸손

그런데, 이런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서양 사상사 토론 시간에 우리 과의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걱정스러웠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교사가 된 이후 학생들에게도 몇 번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게 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롭고 훌륭한 철학자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나와 같은 불만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왜 모든 철학책에서는 이렇게 건방지고, 싸가지 없고,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독설만은 뱉어내어, 아테네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죽음을 자초한 소크라테스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일까? 나와 함께 독서 동아리를 맡아 같이 토론을 해 주신 윤리 선생님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진리를 주장한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소크라테스가 당시의 기득권 세력들과 소피스트들을 토론을 통해 매섭게 비판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요즘 나꼼수가 기득권 세력을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듯이요."

어쩌면 나는 소크라테스의 겸손하지 않은 말투,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독설이라는 일부분 때문에 그 뒤에 숨겨진 깊은 철학의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인간 자체가 싫어지니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그 후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논어>를 읽혀 보았다. 참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인데, 고등학생인 내 제자들은 큰 저항감 없이 읽었다. 반응도 좋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을 때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내 상사라면 피곤할 것 같다, 소크라테스 정말 재수 없다, 아테네 사람들이 진짜 짜증났을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이 <논어>에 대해서는 "공자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다, 이게 실현 가능하겠는가? 임금 앞에서 너무 비굴하다"라는 비판은 했지만, 공자라는 인간이 싫다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논어>는 읽으면 불편해지는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과 토론하는 동안 이십 년 가까이 품었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의문이 갑자기 풀렸다. 소크라테스가 맘에 들지 않고 그의 행동과 말이 다 싫었던 것은 그가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우리와는 달리 강한 자기 주장과 자기 자랑을 좋게 보는, 전형적인 서양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적 정서 속에서 살아온 나도, 내 학생들도 부지불식간에 겸손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뼈에 새기고 있었기에, 자신이 옳다며 남을 비난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따뜻한 진보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번 대선 공약들을 바라보며 진보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등의 주장은 진보가 옛날에 개발해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내용들인데, 보수가 날름 삼켜서 자신들의 주장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까지 이겼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지적하듯이 우리나라 진보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딱딱하고 투쟁적이며 차가운 이미지이다.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같이 따뜻한 정책과 주장을 개발해낸 건 진보인데, 왜 차가운 이미지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있는 것일까? 어떤 이는 보수 측에서 진보의 이미지를 그렇게 몰아갔기 때문이라고 보수 탓을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겠지만, 과연 이것만이 전부일까?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이 서양의 것이기에 서양의 주장만 충실히 답습한 결과 겸손과 배려와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적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주장을 펼치지는 못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한국에 살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여 정권을 잡고자 한다면,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주장과 이미지와 슬로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정희 후보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어야 할, 다양한 비판과 칭찬 모두에 귀를 기울어야 할, 정치인이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개인적인 내 생각을 말해 보고자 할 뿐이다.
#이정희 #소크라테스의 변명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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