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벚꽃문신』실천문학사 出 2012년 우수문학도서 선정
실천문학사
- 가장 마음이 가는 시는?"시집 제목으로도 쓰인 <벚꽃 문신>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끝나고 걸어서 오고 있는데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아버지 사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경운기 바퀴에 낀 등에 피가 분수처럼 솟고 있는데 어려운 형편에 병원에도 못 가고 그 피를 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그때 등에 커다란 자국이 남으셨다. 셋방에서 가족들끼리 운 기억밖에 없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목욕탕에 한 번도 안 가셨다. 사고가 나던 4월만 되면 상처가 아프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십 년 넘게 목욕탕에 간 적이 없다아들에게 등을 맡길 만도 한데단 한 번도 내어준 적 없다아버지의 젊은 날이바큇자국으로 남아 있는 한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등경운기와 사투를 벌이며빨려 들어가는 옷자락을 얼마나 붙들었던가논바닥에 경운기 대가리와 뒤집어졌을 때콧구멍 벌렁거려며 밥 냄새에 까만 눈 반짝이던삼 남매의 얼굴이 흙탕물에 뒹굴었으리라바퀴가 등을 지나간 뒤울지도 못하고 깨진 창문에 덧댄 비닐처럼벌벌 떨었다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앓는 소리를 들으며개구리처럼 눈만 끔벅이다가부엌 구석에 쪼그려 앉아 졸았다경운기와 씨름한 샅바가 붉게 물들어아버지 등에 감겼다, 병원에 가자고등에 손을 얹은 어머니의 눈물뒤집어지던 꽃잎 훌러덩훌러덩등에 새겨졌다- p.28 <벚꽃 문신>-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닌 듯싶다.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지 위해서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시가 안 될 때는 항상 내 삶을 봤다. 부모님은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고 다녀오면 작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뤄놓은 것 하나 없이 다시 다락방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어머니가 우셨다, 용달차에 책만 끌고 내려왔으니까. 용달 비용까지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다.
그때의 내 삶이 비루하고 곤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3개월 만에 탁발순례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짐 싸고 내려와서 3개월 동안 정말 내 스스로에게 바닥을 친 때였다. 시에 대한 무능력, 자신에 대한 무능력, 막막함 등이 있었는데….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가 오기도 하고, 생전 처음 부모님을 두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그러던 차에 안학수 시인을 통해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탁발순례에 참여했다. 충청남도의 모든 시골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땐 정체성이 마구마구 흔들렸다. 그때 돌아다니다보니까 그동안 가졌던 모든 것들이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고민이었다. 나는 정말 내 스스로를 보게 되었던 거다. 현장에서 보았던 그들의 삶을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가진 것에 만족을 모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탁발순례를 하는 동안 도의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절에 들어가 보지 않을래?' 하고 말씀하셨다. 이미 많은 예술가, 작가들이 그 절에 머물렀다는 얘길 들었다. 첫 시집을 낼 때까지 한번 들어가보자는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탁발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3일 만에 절로 들어가게 된 거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전에는 불평했던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지금의 박경희로 오게 되었다."
- 아버지가 시집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더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가족이 그랬듯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게도 남다른 감정이 있을 것 같다. 어떤가?"돌아가신 날 아버지가 남긴 말이 '딸기 먹어!'라는 말이었다. 그날 가족들끼리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나는 김밥 싸드렸다. 평범하고도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하루였는데, 그날 밤에 그렇게 떠나셨다. 아버지를 통해서 '오늘 하루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일은 잘 안 보고, 오늘 이 순간을 잘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워낙 큰 사건들을 겪어 가다보니깐….
내가 보물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 그 보물을 찾아보겠다고 28년 살았던 고향을 떠나 왔는데 막상 보물을 찾아보니깐 그 보물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보령이더라. 이 자리만큼 좋은 자리가 없다. 아마 이 안에만 있었다면 안 보였을 것들이다."
- 나의 소감으로 박경희 시인의 시에는 유독 '촉각'이 강하다는 인상이 짙었다. 자칫 고루해보일 수도 있는 소재들이 선명한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이유가 바로 그 촉각적 이미지의 힘이 아닐까 싶은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저 몸에 '밴' 것 같다. 의도된 바는 없다. 한번은 어떤 시인과 계곡엘 갔는데 다리 밑에 물고기를 노니는 것을 보고 '저것이 무엇인줄 아느냐?'고 묻기에 무심코 '피라미나 송사리?'라고 대답했는데. '저건 버들치야!'라는 얘길 듣는 순간에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때린 것 같았다. 시인이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은 남이 다 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그 뒤에 시를 쓰려면 내 모든 몸과 감각으로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야생화 책을 들고 산과 들로 헤매고 다녔다. 그때부터 생태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진짜가 아니면, 스스로가 아니면 진실한 시나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슬프고 힘들어도 웃음과 애잔함 깔리는 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