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곡식> 겉표지
들녘
올해도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귀한 생강 한 봉지를 얻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은근 기다려지곤 하는 터라 올해도 변함없이 받을 수 있음이 다행스러운 한편 여간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내가 친정의 생강을 이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이유는 겨울이면 꼭 한두 차례 찾아들어 호된 고생을 하기 일쑤인 감기몸살에 친정의 생강이 그 어떤 약보다 잘 듣기 때문이다.
이는 친정의 생강이 우리의 토종이기 때문이다. 종자 값이 턱없이 비싼데다가 개량종에 비해 씨알이 비교적 작아 토종 생강임을 알고 제값을 쳐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종자 값도 챙기기 어려운, 그래서 이제는 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그런 토종 생강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유래한 말인, 우리 땅에서 자란 먹을거리가 우리 체질에 맞을 확률이 높다는 뜻의 '신토불이'란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신토불이의 가치를 친정 부모님의 토종생강이 해마다 입증해주곤 하는 것이다.
"신토불이? 뜻대로 해석하면, 건강하게 살려면 해외여행 가면서 먹을 것 바리바리 싸들고 가거나, 외국에서 살아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만 먹어야 한다는 말과 같잖아.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잘 살잖아. 외국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사는데도 말이야. 이런 걸 보면 신토불이는 그냥 우리 것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수입 농산물에 밀려나는 우리 농산물을 많이 먹자는 의미로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한 것 같아.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는 글로벌 시대에 비효율적인 가치관이랄까?" 때문에 우리 땅에서 심어 거둔 우리 농작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내게 가끔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외국에서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보면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신토불이는 공연한 고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되는 먹을거리들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곡물수입률 '세계 5위'... 우리 국민 건강이 남의 손에 미국은 자기들이 먹는 것은 무척 까다롭게 따지면서 자국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확할 때만 농약을 뿌리는데 미국은 수확 후에도 농약처리를 하는 것이 법으로 인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할 때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고 일단 선적한 후에는 "내가 알 게 뭐냐?"는 배짱입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까지는 선박으로 40일 정도 걸리는데 어쩔 수 없이 적도 부근을 지나오게 됩니다. 적도를 지날 때 선실온도가 60℃ 정도로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벌레 먹고 썩고 싹이 나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청산이나 메틸 브로마이드로 훈증을 합니다. 실제로 89년 인천항에 들어온 밀을 하역하던 인부 한 사람은 즉사하고 네 사람은 졸도해버린 사고가 있었습니다. - <토종곡식>에서
곡물이든 과일이든 이처럼 생산지를 떠나 우리나라로 오는 동안 해충으로부터의 피해를 막고자 살충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곡물수입률은 세계 5위다. 이는 단순한 5위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이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말과 같은 만큼 위험천만한 5위인 것이다.
우리의 곡물수입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우리의 곡물자급률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2012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1년 현재 식량 자급률(쌀·보리·콩 등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량 중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율)은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4.5%이며, 곡물자급률(식량자급률에 사료용 곡물 등을 더한 것)은 22.6%이다. 2010년의 54.0%, 26.7%에 비해 10%나 감소한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말이다.
극심한 굶주림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2009년 현재 식량자급률이 76.1%이란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충격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식량자급률이 낮아지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것은 우리 토종 곡식들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우리의 토종곡식들이 많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종묘회사들의 개량 씨앗들이다. IMF 때 외국의 자본에 팔리고 만 종묘회사들의.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이젠 더 이상 그해 수확한 것의 일부(씨앗)를 보관했다가 이듬해 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이젠 우리의 농부들은 해마다 (금보다) 비싼 종자 값을 치르며 농사를 짓고 있다. 종묘회사들이 개량한 씨앗은 한해 수확으로 그치고 마는 품종들이기 때문에 씨앗을 받아 뿌려봤자 싹이 나오지 않거나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금보다 비싼 씨앗... "종자 값이 왜 이리 비싸만 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