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교수가 22일 오후 광주를 방문 3000명이 넘는 시민들과 프리 허그를 했다.
이주빈
22일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광주 충장로가 인파로 가득 찼다. 10대 청소년부터 칠순 노인까지 세대도 다양했다. 얼추 3000명이 넘게 모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표창원 경찰대 교수와 프리 허그를 하기 위해서였다.
표 교수는 광주에서 그리 유명한 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교수나 문재인 후보의 광주 유세 때보다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은 더 많았다. 왜 그랬을까. 표 교수가 광주를 찾아 프리 허그를 하겠다고 한 까닭에 그 답이 있다.
표 교수는 "전국 최고의 투표율(80.4%)을 보인 광주가 이번 선거의 유일한 승자"라며 "광주와 광주 시민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러 왔다"고 했다. 그는 또 "제가 안아드리려고 온 게 아니라 제가 안기려고 온 것"이라며 "저도 마음이 아프고 상실감이 크고, 기댈 데가 필요했는데 저보다 더 가슴이 아플 광주 시민들이 경상도 사람인 저를 반겨 주셔서 많이 치유가 됐다"고 말했다.
투표율 1위를 해 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동네가 위로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낙선한 후보인 문재인 후보에게 92% 몰표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젠 '대통령 당선인'이 된 박근혜 후보는 광주에서 7.8%를 얻었다.
투표결과 지도에서 다시 '섬'으로 남은 호남공중파 방송이 그린 후보별 득표율 지도에서 다시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섬으로 남았다. 투표결과 지도를 보면서 광주 사람들은 기괴한 침묵에 빠졌다. 직장에서, 술집에서 흔한 패인 논쟁 하나 일지 않았다. 서로가 이심전심으로 침묵을 강제하는 해괴한 정서 붕괴의 상태가 아직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 한 보수 인사가 "광주가 자랑스럽다"고 대놓고 말한다. 92% '몰빵'을 받은 이도 찾지 않는데 아무 상관없는 인사가 와서 "안아주겠다"고까지 한다. 서로 말도 못하고, 전라도 경계 밖으론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다시 주눅 들어 있는데 말이다.
표 교수와 프리 허그를 하겠다고 늘어선 줄이 300m가 넘었다. 시린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한번 안아보겠다고 길게 늘어선 줄, 그것은 다시 고립된 광주를 상징했다. 그래서 슬픈 줄이고 한 서린 줄이며 동시에 다시 일어서는 무등(無等)의 줄이다.
광주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이 무엇이었는지 따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광주를 위한 힐링을 그리고 광주 스스로의 힐링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대선 승패를 가른 요인을 세대별 대결에서 찾는다. 즉 2030세대와 5060세대의 대결에서 5060세대가 이겼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경상도 패권주의가 표류하는 충청민심을 얻어 호남을 고립시키며 승리했다는 지역대결론을 펼치기도 한다. 지역에서 이긴 승자독식의 그림에서는 그럴듯한 논리다.
그렇지만 난 이번 대선에서도 '욕망'이 승패를 갈랐다고 본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편하게 먹고살고 싶다는 욕망, 보다 큰 집에서 안온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이러저런 잔걱정 없이 속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
고백컨대 교만하게도 나는 이번 대선에선 '욕망의 자기증식'보다는 '욕망의 해체'에 기초한 투표행태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욕망의 기대치는 '뉴타운 버블'처럼 사라져버려 유권자들은 '심판'의 투표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투표결과가 굳어가던 19일 밤 나는 "유권자들은 '욕망의 해체'보다는 '욕망을 실현시켜줄 대체재'를 더 원했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갑갑할 정도로 가치를 더 따지는 문재인 후보보다 '다시 잘 살게 해주겠다'는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줄 MB의 대체재로 더 적합하다고 유권자들은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은 또 '욕망에 기초한 선택'은 그릇된 것인가. 근대성에 기초한 근대의 진화는 욕망과 그 통제의 진화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쉽게 얘기하면 '잘 살자 그러나 함께 잘 살자'는 문장이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21세기 초입인 지금까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로 통칭되는 세력들은 '잘 사는 문제'보다는 '가치 있는 삶'에 더 천착한다. 이미 유권자들은 민주주의가 밥이 되는, 평화가 돈이 되는 실사구시를 원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진보'는 '민주주의' 혹은 '평화'라는 가치개념에 편향돼 '욕망' 자체를 폄훼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욕망에 대적하는 이 가치 우선의 법칙은 늘 상징체계를 만든다. 그것이 현실정치로 들어오면 '민주성지' '민주당의 심장' '진보정당의 뿌리' 같은 슬로건으로 구체화된다. 그렇다, 광주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광주에겐 거세당한 욕망의 부활과 생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