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우리는 왜 울었을까?

꼬여버린 삶, 나이 서른...투표로 위로 받을 수 있길

등록 2012.12.18 14:00수정 2012.12.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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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 땐 우리들의 통화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집으로 가는 길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 땐 우리들의 통화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김종훈

지난 일요일 밤 11시 40분,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데 대뜸 "나야. 너한테 미안해서 전화했어." 친구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그래. 잘 지냈냐? 술 마셨어?"라고 물었다. "응, 미안. 미안해서 전화했어. 잘 지냈지? 미안하다. 계속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지난 번 빌린 돈 말이야. 진짜 갚으려고 했는데 미안해."

친구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야, 잠깐만. 너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딘데? 뭐하고 있어?" "……." 친구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더 이상 못 견디겠어. 미안하다. 친구야. 더 이상 전화할 곳도 없고, 못 버티겠어. 이제 가려고. 미안하다." "야, 기다려.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금 갈 테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기다려."

친구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를 갔다가 다시 공부해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도 무리 없이 잘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업도 했다. 그런데 3년 전,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망해 직장을 잃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어느 날 연락이 와서 회사가 부도나서 잘렸다며 소주나 한 잔 사달라고 해서 위로만 해줬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땐, 좋은 아이템이 있어 이제 곧 대박 날 것이라며 인터넷 창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에게 재차 전화가 왔을 땐, '돈 좀 빌릴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긁어모아 2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미안하다. (죽으러) 간다"는 말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고 화가 났다. 돈 빌려가서 갑자기 '죽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진짜 화가 났던 이유, 친구의 마지막을 막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야, 너 이대로 가면 나는 어찌 되는 거냐? 너 마지막 통화하고 이렇게 가버리면 나는 너희 부모님 어찌 보냐? 다른 친구들은? 친구 하나 못 살리고 보낸 나는 어찌 되는 거냐고?"

친구는 계속 울기만 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지금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들의 '서른', 어디서부터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이유조차 몰라 한없이 울기만 했다. 그 날 새벽 세 시 언저리까지 통화를 했다. 전화가 갑자기 끊어지면 다시 걸어 달래고 달래며 괜찮다고 힘내자고 말했다. 그러다 지쳐 결국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늦은 오후가 돼서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질질 짠 것 창피하고 미안해. 힘낼게. 방법이 있겠지. 다시 연락할게. 건강해라."

문자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그냥 슬펐다


광화문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이들과 함께 했을까?
광화문에서나는 무엇을 위해 이들과 함께 했을까?김종훈

친구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슬펐다. '우리들의 청춘, 왜 이리 사는 게 힘든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친구에게 한없이 위로했지만, 나 역시 도서관 구석에 앉아 다른 청춘처럼 희망 없는 내일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죽겠다'는 친구와 처지에선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친구와 달랐던 점 하나는 스스로를 "괜찮다"고 위로했을 뿐이다.

그래도 바람 하나는, 친구와의 다음 통화에선 "나도 이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일의 '투표'가 우리들의 '희망'이 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투표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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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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