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소연
18대 대선의 후보 간 마지막 TV 토론회가 지난 16일로 끝났다. 단 3회의 TV 토론회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됨됨이와 정책을 따져 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때론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TV토론회를 많이 했던 지난 대선들과 비교해 보면 그 아쉬움은 배가된다.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가 특정후보의 양자토론 거부 때문에 이렇게 빼앗기고 보니, 새삼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같은 경우에도 특히 후보들의 정책에 대해서 가장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단 3회의 TV 토론회였다. 언론을 통해 걸러진 내용이 아닌, 후보자가 직접 설명하는 정책과 비전이 그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공약에도 없는데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 이정희 후보가 사퇴해 박근혜-문재인 양자토론으로 진행된 3차 TV 토론을 보면서 나는 두 후보, 특히 박근혜 후보의 공약과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경악시킨 것은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시키겠다는 박근혜의 공약이었다.
나는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박근혜 후보가 선행학습 금지법이 자신의 공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 참 정치 편하게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행학습이 한국 공교육을 망친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 것이다.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어떤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과 단기적인 처방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일이다. 이때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의 자발성까지 하나의 제도와 시스템에 끌어들인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스템으로 치환되지 않는 인간의 자율성을 통치의 중요한 요소로 포섭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선행학습 금지법은 하수 중의 하수가 선택하는 정책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학재단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박근혜 후보라면, 초중고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학교와 학생과 학부모 등 각각의 교육주체들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그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했을 법도 한데, 거기에 대한 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선행학습이 전혀 없어질 리도 없으려니와, 원인이 아닌 결과에 대한 즉자적인 법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21세기적인 리더십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박근혜의 선행학습 금지법에서 유신의 잔향을 강하게 느꼈다. 이것은 말하자면 '박근혜의 긴급조치 1호'가 아닐까 싶다. (더 황당한 것은 민주통합당이 TV토론 직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박근혜 후보가 '선행학습 금지법'을 만들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자신의 공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선행학습 유발 시험 금지'를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공교육정상화촉진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사실 더욱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토론회 초반부에 문재인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 참여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를 꾸렸는데 이것을 MB 정부 치하에서 폐지하는 법안을 박근혜가 공동발의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는 "꼭 법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꼭 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선행학습 금지법은 왜 만든다고 했을까? 이것은 박근혜가 법과 제도를 자기 편한 대로 만들고 적용시키고 또 폐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불리할 땐 법이 필요 없고, 아쉬울 땐 무슨 법이라도 만들겠다니, 이 얼마나 속편한 정치철학인가.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로서 박근혜가 갖고 있는 특유의 특권의식이 그의 선거공약에 반영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과거에 대한 평가를 넘어 잘못된 과거의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데 설마 유신 같은 시절이 다시 오겠느냐, 설마 민주주의가 무너지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지난 MB 정부 5년은 우리의 그런 상식을 참담하게 무너뜨렸다. 박근혜가 당선된다고 해서 설마 제2의 유신시대가 오지는 않겠지만, 한국형 네오파시즘이 도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반값등록금과 전혀 다른 국가장학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