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벤츠 여검사' 무죄 왜?... "변호사와 연인관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징역 3년 선고받은 '벤츠 여검사' 항소심 무죄

등록 2012.12.14 20:17수정 2012.12.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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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관계로 지내던 변호사한테서 벤츠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건네받아 사용하던 중 변호사가 청탁한 고소사건을 다른 검사한테 '사건 처리를 도와 달라'고 부탁한 혐의(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벤츠 여검사'에 대해 1심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왜 무죄 판결을 내렸는지 이번 사건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L 전 검사, 내연관계 변호사에게서 벤츠 승용차와 신용카드 받아 써

먼저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L(37,여) 검사는 내연관계로 지내던 부장판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대표인 A변호사가 2010년 9월 동업하던 건설업자 H씨를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고소사건 주임검사에게 부탁해 H씨가 구속되거나,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H씨를 처음 고소할 무렵인 2010년 5월 L검사가 A변호사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았는데, A변호사로부터 사건청탁을 받은 2010년 9월 이후에도 신용카드로 540만원 짜리 샤넬 핸드백과 고급의류 구입, 항공권 대금 등으로 65회에 걸쳐 2311만원을 결제했고, 또 2010년 9월~2011년 5월 사이 A변호사가 제공해 준 벤츠 승용차를 사용해 3280만원 등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총 5591만원 상당의 이익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A변호사의 청탁을 받은 L검사가 H씨 고소사건의 주임검사(L검사와 임관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잘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2011년 7월 A변호사와 알고 지내던 B(여)씨가 "현직 검사가 변호사의 사건을 도와주고 금품을 받았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고, 파문이 확산되자 L검사는 검복을 벗었다.


결국 검찰은 L 전 검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L 전 검사는 "A변호사로부터 청탁받은 사실도 없고,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는 연인관계에 근거한 것으로 청탁 사이에 대가관계가 없어 무죄"라고 주장했다.

1심, 알선수재 혐의 적용해 L 전 검사에 징역 3년


하지만 1심인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김진석 부장판사)는 지난 1월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L 전 검사에게 징역 3년의 실형과 추징금 4462만 원 및 명품 핸드백, 의류의 몰수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L 전 검사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며, 현재 임신 중신 점 등을 참작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H씨 사건의 주임검사가 '피고인이 이 사건을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진술한 점, 피고인이 A변호사에게 '주임검사에게 말해뒀으니 그리 알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A변호사로부터 H씨 고소사건에 관해 청탁을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L 전 검사는 "문자메시지는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A변호사에게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과장해 과시하는 차원에서 실제 하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문자메시지는 피고인이 A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며 일축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도 법률 전문가인 피고인으로서는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은 시점 이후에는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를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내연관계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넘어 청탁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A변호사로부터 받은 5591만원 상당의 이익에는 포괄적으로 봐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인 H씨 고소사건에 대한 알선의 대가가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검사로서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신분이었던 피고인이 내연관계에 있었던 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인 고소사건의 알선에 관해 5591만원에 이르는 이익을 수수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청탁의 취지에 따라 H씨 고소사건의 주임검사에게 전화해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부탁하는 등 구체적인 알선행위까지 한 점, 이 사건 범행으로 검사의 청렴성과 도덕성, 검사 직무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신용카드 및 벤츠 승용차 사용으로 받은 이익이 변호사와의 애정 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청탁 및 대가성의 유무에 관해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에 비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고 잘못을 진지하게 뉘우치고 있지도 않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비록 피고인이 검찰에 누를 끼치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실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L 전 검사 "벤츠 승용차는 연인관계에 있는 사랑의 증표"

그러자 L 전 검사는 "설령 A변호사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A변호사가 연인관계에 있는 자신에게 신용카드를 줘 사용하게 하고, 사랑의 증표로 벤츠 승용차를 줘 관리한 것일 뿐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한 대가가 아니다"며 항소했다.

L씨 측 변호인은 "연인관계에 기해 A변호사로부터 받은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를 H씨 고소사건에 대한 청탁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거나 관리해 온 것을 청탁 시점 이후의 새로운 수재행위로 봐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항소심, L 전 검사 무죄…연인관계이지 청탁과 관계없어

항소심인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형천 부장판사)는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L(37,여) 전 검사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2007년 내연관계가 시작된 A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온 피고인이 A로부터 H씨 고소사건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은 2010년 9월인데, 피고인이 A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은 것은 청탁 4개월 전인 2010년 4월이며, 벤츠 승용차 사용 허락을 받은 것도 청탁 2년7개월 전인 2008년 2월"이라며 "당시 피고인이 여자관계가 복잡한 A에 대해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정표를 요구해 사랑의 정표로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A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청탁을 받기 전까지 사용한 카드사용액은 73회에 걸쳐 1712만원이고, 청탁을 받은 2010년 9월13일부터 연말까지 사용한 카드사용액은 65회에 걸쳐 2311만원인데, 이 기간 중에는 생일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인 샤넬 핸드백 539만원, 샤넬 의류 590만원 등 1129만원의 고액 사용액이 포함돼 있어 카드 사용액이 많아진 것이지, A로부터 청탁을 받은 이후의 신용카드 사용빈도와 금액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거나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내연관계가 시작된 이후 A변호사로부터 2007년 10월 30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반지, 2650만원 상당의 까르띠에 시계, 2007년 크리스마스에 1200만원 상당의 모피롱코트, 2008년 1월 450만원 상당의 모피반코트, 2009년 4월 379만원 상당의 샤넬 핸드백, 5월에 600만원 상당의 골프채 등 선물과 현금을 수시로 받은 점을 감안했다.

재판부는 "H씨 고소사건의 주임검사는 '피고인이 H씨 고소사건을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부탁' 외에 다른 부탁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며 "피고인이 주임검사에게 한 전화는 내연관계에 있는 A변호사를 위해 호의로 한 것이지, A변호사로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따라서 A변호사의 청탁 시점 이전에 내연관계에 기해 받은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를 피고인이 청탁 시점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거나 보관 및 사용한 것과 청탁 사이에는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러므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해야 함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죄에 있어서의 대가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 '연인관계' 인정해 알선 대가 아니라고 판단

이번 사건은 L 전 검사가 수수한 이익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한 대가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재판부의 판단을 풀어보면 A변호사가 부탁한 것은 청탁이 맞지만, L검사가 동료 검사에게 전화를 건 것은 연인관계에 있던 A변호사를 위한 것이지, A변호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알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몇 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A변호사가 지속적으로 해 오던 금전적 지원 내용이 이번 판단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벤츠 승용차'가 '사랑의 증표'라는 L 전 검사의 주장을 재판부도 그래서 받아들였다.

검찰은 L검사가 H씨 고소사건 주임검사에게 전화한 시점 이후에도 A변호사로부터 받은 금전적 지원을 청탁에 대한 대가로 판단해 기소한 것이고, 1심 재판부도 이에 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L검사가 주임검사에게 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꾸준히 받아오던 '연인관계'를 인정해, 비록 전화 이후에도 금전적 지원을 계속 받았어도, 이를 알선의 대가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검찰은 상고할 것으로 보이는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벤츠 여검사 #알선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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