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박 후보는 지난 11월 29일 부평역광장을 방문했다. <부평신문 자료사진>
한만송
인천은 해방 후 팔도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몰려든 곳이다. 충청남도 서산 등에서 배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과 한국전쟁 전후에 내려온 황해도 사람들이 유독 많다. 산업화 시기에는 인천 남동·주안·부평공단으로 일자리를 찾아 영·호남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동안 돈을 벌어 서울과 경기도 부천 등으로 이사한 이들도 꽤 있다. 또한 인천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 서울과 부천에 사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서울로 출근하는 이들도 꽤 된다. 한마디로 인천은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었던 '기회의 도시'이자, 기회가 되면 떠날 수 있는 '서울의 변방'이다.
1960~80년대에 타 지역에서 와 인천에 정착한 이들의 다음 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프로야구단 에스케이(SK)가 좋은 성적을 올린 것도 있지만, 20~40대는 SK를 통해 인천사람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대구·경북과 부산, 광주 시민이 삼성과 롯데, 기아 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듯이 말이다. 인천에는 바로 이 자식 세대부터 인천시민이라는 정체성이 생성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팔도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인천은 많은 선거에서 '바로미터'가 됐다. 지난 4.11총선 때 여야가 팽팽히 경쟁했듯이, 인천 12개 지역구를 여야가 절반씩 나눠 가졌다.
'투표율 꼴찌 불명예 벗자' 목소리 높아 선거 때마다 인천의 숙제는 '투표율 꼴찌'라는 불명예를 벗는 것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 등에서 투표율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4.11총선에서도 인천은 투표율 51.4%를 기록해 전국 꼴찌였다. 당시 전국 평균 투표율은 54.2%였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은 2007년 대선,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투표율 꼴찌를 기록했다.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투표율은 전국 시·도 가운데 뒤에서 2∼4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