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둘다 친핵 입장이었지만, 메르켈 총리는 입장을 확 바꿨다.
청와대
후쿠시마 사고가 벌어진 직후,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탈핵을 선언했다. 그것도 사고 반년 전인 2010년 가을 독일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결정을 물리학자인 '친핵' 정치인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강행할 때 메르켈 총리는 흡사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원전은 경제적이며 독일의 에너지 위기를 줄이는 기술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기술 선진국 일본에서 자연재해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는 핵발전소는 안전 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독일에 심각한 경고를 보내왔다. 결국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는 정치적 수치에도 불구하고 8기의 핵발전소 가동을 즉각 중단함과 동시에 남은 9기의 발전소도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후쿠시마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탈핵을 선언한 독일이 택한 대안은 바로 재생에너지이다. 29 GW가 설치된 풍력발전은 이미 독일 내에서 가장 저렴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이며, 우리나라에 비해 30%나 부족한 일사량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2011년 말 현재 핵발전소 26기에 해당하는 26 GW의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 세계에서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국가로 발전했다. 재생에너지 시설에 투자된 금액은 2011년 한 해에만 229억 유로, 약 32조원에 달한다. 핵발전을 대체할 발전 시설에만 이 중 201억 유로, 약 28조원이 투입되었다. 시장에 돈이 도는 만큼 일자리 창출도 매우 활발한데, 2011년 말 현재 총 38만 1600개의 일자리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만들어졌다. 독일이 줄인 총 온실가스 1억 3천만 톤 CO2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7천만 톤 CO2가 바로 재생가능에너지로부터 얻은 전력 때문이다. 교토의정서가 설정한 의무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한,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야당시절 재생에너지 확대를 시장경제 논리에 반하는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은 그러나 지금은 재생에너지의 새로운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핵을 없애고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목에 힘을 주어 말한다.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서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독일을 피해 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건실한 독일의 재생에너지 산업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핵을 버리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택한 독일이 누리는 이익은 비단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온실가스 감축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효과 또한 상당하다. 화석연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독일은 에너지 확보에 상당한 금액을 지출해야만 했다. 물론 이 돈은 에너지를 수입한 곳으로 흘러갔다.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반면 지역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이 들어서면서, 각 가정이나 산업체가 지출하는 에너지 비용이 결국에는 자기 마을에 머무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농촌 지역의 경우, 지역에 돈이 머물면서 마을을 떠나고자 했던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재생에너지 관련한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지역 공동체의 붕괴를 막은 것이다.
독일의 태양에너지 이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명박 대통령은 올 2월 취임 4주년 특별회견에서 독일이 탈핵을 선언한 것은 핵발전소가 많은 프랑스에서 전력을 가져다쓰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사실과는 정반대의 주장이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탈핵을 선언한 2011년의 경우 독일은 약 6 TWh에 해당하는 전력을 주변국에 수출했다. 2012년 현재 전력 수출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인데, 독일에너지수자원협회(BDEW)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말까지 누적 수출량은 총 12.3 TWh으로, 이는 고리 1호기가 연간 생산하는 전력량의 2.5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전력 요금이 증가한 것도 아니다. 탈핵 선언 이후에도 전력 요금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가장 비싼 에너지원이라 비판받는 태양광 발전의 경우, 이미 지난해 가을 가정용 소매 전력 요금보다 더 저렴하게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2~3년이 지나면 발전차액에 대한 지원 없이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10월 독일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내년 가정용 전기요금이 최대 18%까지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에너지 다소비 기업 또한 짊어져야 할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부담을 일반 가정에 전가해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꼼수를 기획한 독일 경제부 장관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방해자로 낙인찍혀 야당과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