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동안 샤워도 면도도 못했더니, 이 순간이 황홀

세상에서 가장 높은 5416m 쏘롱라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등록 2012.12.14 14:35수정 2012.12.1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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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라운딩의 백미는 해발 5416m, 쏘롱라(Throng La)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쏘롱라는 야카와캉(6482m)와 쏘롱피크(6484m)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를 넘기 위해 10여일을 걸어서 해발 4800m, 하이캠프에 도착하였습니다.

묵티나트 모습 마을 입구에서 본 묵티나트 정경
묵티나트 모습마을 입구에서 본 묵티나트 정경신한범

10여일을 걸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은 해발 5416미터의 쏘롱라였습니다. 제 의지와 관계없이 고소가 오거나 폭설이 오면 10여일 이상 걸은 트레일을 되돌아 가거나, 헬기를 이용해야 합니다. 저는 두 발로 쏘롱라를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벽 4시 30분, 해드렌턴을 켜고 출발하였습니다. 추위와 강한 바람은 몸을 얼리고 부족한 산소는 다리를 마비시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혼자입니다. 가이드도 포터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체력만큼 걷고 있기에 남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이겠지요.

여명이 밝아오자 희미하게 사물이 눈에 들어 옵니다. 멀리 쏘롱피크의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설산이 조화를 이루며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입니다. 정지된 화면 속을 트래커만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서히 빛이 설산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햇살을 받은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웅장한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며 산과 하늘이 맞닿은 곳이 보입니다. 쏘롱라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5416m)에 서다

다울라기리와 무스탕 모습 쏘롱라를 넘어 만난 새로운 세상
다울라기리와 무스탕 모습쏘롱라를 넘어 만난 새로운 세상신한범

오전 7시 20분, 드디어 쏘롱라(Throng La, 5416m)에 도착하였습니다. 쏘롱라에는 룽다와 타루초(불교의 경전이 적힌 깃발)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마루에 도착한 것입니다. 먼저 도착한 스페인 트레커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덕담을 나눕니다. 탈진과 고소로 서 있을 힘도 없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쏘롱라 정상 표지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일주 트래킹에서 당신의 도전 중의 하나인 쏘롱라 고개의 성공적인 등정과 통과를 축하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마르샹디 강을 따라 마낭 지역에서 트래킹을 즐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칼리간타키 강을 따라 가는 트래킹 또한 즐기기를 바랍니다." - ACAP, MANANG

쏘롱라 너머에는 지난 10여일을 걸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거대한 다울라기리(Dhauligiri, 8167m)를 중심으로 무채색의 산야가 눈에 들어옵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척박함과 급한 경사 그리고 롯지 하나 없는 트레일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묵티나트까지 해발 1600m를 내려가야 합니다. 조급함에 속도를 내자 가이드가 만류합니다. 고도를 급격히 올리면 고소증에 걸리는 것처럼 고도를 급격히 내려도 저소증이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외부와 동일한 혈압을 유지하려고 압력을 높이기 때문에 그 순간 고혈압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히말라야든 인생이든 빠른 것 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한참을 내려온 차바르부(Chabarbu)의 티숍(Tea Shop)에서 차와 계란을 먹으니 정신이 났습니다. 가이드는 열심히 저에게 다울라기리군과 무스탕 그리고 돌포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빨리 마을에 도착하여 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묵티나트

쏘롱라 정상 세상에서 가장 높은 쏘롱라 정상 모습
쏘롱라 정상세상에서 가장 높은 쏘롱라 정상 모습신한범

쏘롱라 모습 하이캠프에서 바라 본 쏘롱라 주변 모습
쏘롱라 모습하이캠프에서 바라 본 쏘롱라 주변 모습신한범

드디어 오전 11시 30분 약 6시간 50분 만에 꿈에 그리던 묵티나트(Muktinath, 3760m)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힌두교 사원과 불교 사원이 아무런 경계 없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에서 종교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묵티나트는 카트만두의 파수파티나트와 함께 힌두교 2대 성지 중 하나입니다. 묵티나트 동쪽 끝자락에 있는 "즈왈라 마이(Jwala mai, 불의 여신)"사원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이곳을 순례하면 현세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네팔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도 이곳을 순례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합니다.


묵티나트 안내판 묵티나트 입구에 있는 마을 안내도
묵티나트 안내판묵티나트 입구에 있는 마을 안내도신한범

히말라야에서 만난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

밥 말리 호텔 묵티나트에서 있는 "호텔 밥말리"
밥 말리 호텔묵티나트에서 있는 "호텔 밥말리"신한범

하이캠프 로지 해발 4800m에 자리잡은 하이캠프 로지 모습
하이캠프 로지해발 4800m에 자리잡은 하이캠프 로지 모습신한범

묵티나트 숙소 이름은 히말라야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 이름을 딴 '밥 말리(Bob Malley)' 호텔이었습니다.

밥 말리(Bob Malley)는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에서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아 자란 그는 부모는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세상을 위해 노래한 뮤지션입니다.

그가 추구한 음악을 '레게'라고 합니다.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과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조화시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음이 임박했을 때까지 노래로 사람들을 보듬고 위로하였습니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
"왜 그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거니?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잊은 거야?"


'밥 말리 호텔'의 낡은 스피커에서 'No Woman, No Cry', 'One World' 등이 흘러 나왔습니다. 로지 주인이 'Bob Malley' 팬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하에 묻힌 레게 가수가 자신의 이름이 히말라야 자락 로지 이름으로 부활되었음을 알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합니다.

'24 Hours Running Hot Shower'

로지 입구에 '24 Hours Running Hot Shower'란 문구가 있었습니다. 전기 온수기가 달린 샤워장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6일 동안 샤워나 면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양동이가 아닌 전기 온수기에서 흘러 나오는 뜨거운 물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6일 만에 핫샤워를 하고 야크스테이크와 창(네팔 전통주)을 주문하였습니다. 이제 고소에 대한 두려움도 추위도 없습니다. 산에서 만난 동료들과 그간의 무용담을 주고 받으며 창을 마시고 꿀 같은 낮잠을 자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합니다.

저녁 숙소 2층 식당에는 트래커, 가이드, 포터가 모두 모였습니다. 식당에서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고생을 한 가이드나 포터들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입니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해발 5416m 쏘롱라는 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며 그간의 무용담과 몇 번씩 포기하고자 했던 마음들을 이야기하며 묵티나트의 밤은 깊어 갑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쏘롱라 #묵티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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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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