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영상위원회에서 주최한 <남영동1985>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경영·박원상 배우와 정지영 감독.(왼쪽부터)
영화공간 주안
맹수진 "아까는 영화의 여운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세 분 말씀을 들으니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 "이 영화가 왜 김근태씨가 살아 있을 때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정지영 "원래는 고문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김근태씨가 돌아가신 후 그분이 쓴 수기 '남영동'를 접하고서, 제가 생각해온 것을 김근태의 체험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영화 개봉이 대선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솔직히 관객이 많이 들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이경영 "('남영동 1985'를 상영하는) 상영관이 너무 적습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거짓을 말해야 방송이 힘을 갖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영화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상영관 수가 줄고 관객수가 떨어지는 것 아닐까요, 감독님? (관객 박수)"
정지영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것은 제 바람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문제인, 안철수 후보가 이 영화를 함께 봤는데 그 자리에 박근혜 후보은 안 왔어요. 그래서 그 분의 소감을 듣지 못했습니다. 따로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영화를 본 소감을 간접적으로라도 듣고 싶습니다."
질문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고문을 하면서 (가해자들이) 라디오를 듣는 장면에서 무척 화가 났는데, 굳이 그 장면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정지영 "남영동 수기를 보면 실제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소리가 김근태씨를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나옵니다. 전 음악프로그램을 야구중계로 바꿨습니다. 음악은 그냥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야구중계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잖아요. 나는 생사를 넘나드는데, 저 사람은 야구중계를 듣는다면 어떨까요? 화가 나셨다면 제 연출이 성공한 거네요."
맹수진 "난 고문을 마치 직접 받는 기분이었어요. 영화 속 김종태의 의지가 참 강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 영화는 공감이나 연민의 영화가 아닌, 체험의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정지영 "이 영화를 만든 심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문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직접 겪지 않고, 신문에 한 줄 나오는 걸 볼 분이지 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든 일어납니다. 비판적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이게 불과 20여 년 전 일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학교에서 현대사를 안 배우더군요.
많은 분들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는 건데, 지난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훼손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단 말이죠. 어른들이 침묵을 지켰잖아요. 저렇게 힘들게 얻어낸 것을... 영혼까지 파괴되면서 일으켜 낸 민주주의를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 이런 의문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너무 의미만 있는 영화처럼 보일 수 있으니, 그냥 슬프고 감동적이다, 아프지만 들춰내 다시 봐야 할 우리 역사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박원상 "연기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든데, 실제는 어땠을까"질문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심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이경영 "이 영화는 다른 영화를 할 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리허설을 하면서 배우끼리 호흡을 맞추는데, 이 영화 중 특히 고문 장면은 리허설을 할 수 없었어요. 여러 번 반복할 수 없으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실제처럼 할 수밖에 없어요. 순간적으로 박원상씨가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우린 연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계속 하기도 했고요. 아마 가해자와 피해자, 두 입장을 모두 지켜봐야했던 감독님이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 모두 미치거나, 아니면 집단 최면에 빠져 이 작품을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원상 "영화가 실제 고문과 얼마나 근접할까를 가장 궁금해 하시던데, 고문에 대한 연기 노하우가 없었어요. (고문) 경험도 없잖아요. 몸으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경영씨는 끊임없이 제 상태를 체크해야 했고, 또 그걸 극 중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되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었죠. 세트장에서 연기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든데, 과거 남영동만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여러 장소에서 고문 당한 많은 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막막했어요. 이게 더 힘들었습니다."
이경영 "우리가 사실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고문 피해자들이 겪은 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기고문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고문 장면을 박원상씨가 직접 겪어냈습니다. 저는, 연기인데도 가해한다는 것 자체가 습성화된다는 걸 느꼈어요."
질문 "박원상씨는 가해자인 이경영씨를 원망한 적은 없었나요?"박원상 "이경영씨는 제가 어렸을 때 우러러보던 분이에요. 그런 분과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설렜는데, 어느새 점점 미워지더군요. (관객 웃음) 그런데 촬영 중간에 이경영씨와 명계남씨가 끊임없이 농담을 하고, 객쩍은 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그게 굉장히 큰 힘이 됐어요. 고마움을 느낍니다."
질문 "영화 마지막에 실제 고문 겪은 사람들의 증언이 다큐멘터리처럼 나오는데,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정지영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걸 생생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그런 증언없이 영화가 끝나면, '옛날에 김근태씨가 그런 일을 겪은 모양이구나'하고 그저 개인의 이야기로 관객이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비단 한 사람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박해받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죠."
맹수진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듣고 자리를 정리해야겠네요."
정지영 "제가 마치 사회적으로 정의를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사회가 정의로워지면 어떤 영화를 만들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어떻게 항상 사회가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를 어렵게 하는 정권과 어렵지 않게 하는 정권이 있을 뿐이겠지요. 전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들춰 관객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남영동 1985>보다는 훨씬 재밌는 영화를 만들 것 같아요."
박원상 "올해는 제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겁니다. 연초에 '부러진 화살'로, 연말에 <남영동 1985>로 관객을 만났으니 복 많이 받은 한 해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작품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어린 학생들을 많이 만나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학생들을 바라보며) 종이로 된 책을 정말 많이 보셨으면 합니다. 저도 책 많이 읽겠습니다."
이경영 "영화 '뮤직박스'는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진실을 기억하자는 대사가 나오는데, <남영동 1985>는 과거를 기억하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료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참 대견하고, 우리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눈길 조심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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