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제 머리 깎는 스님들

정교분리 원칙과 세부기준, 시민들이 만들어야

등록 2012.12.12 15:31수정 2012.12.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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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는 2008년부터 정부와 국회에 종교차별 금지와 정교분리 원칙준수를 주장해왔다. 최근 불교계가 대통령선거에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앞장서 스스로 정교분리 잣대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인권활동을 해 온 J스님은 지난 12월 3일 조계사에서 전직 총무원장들과 특정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하려다 자체 감찰기관에서 물리적으로 막았다고 한다.

조계종 한 관계자는 "대웅전 앞에서 하는 특정후보지지 기자회견은 지나치다"며 "소수 약자의 권익을 위한 일을 해온 스님의 그동안 행동과 동떨어진 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개인 의견을 피력했다.

J스님을 만난 한 스님은 "'동서화합을 위해'라는 주장이 마치 정치권 인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며 그동안 살아온 인권운동가 스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불교계 인터넷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주요 종단의 현직 관계자가 특정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혀 헌법정신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10월 조계종 포교원의 공식기구를 맡은 A스님이 선거캠프 지도법사를 맡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스님은 "선거캠프기자회견인줄은 몰랐지만 오랜 친분으로 간곡한 요청에 지도법사를 승낙한 것으로 포교를 위한 것이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러나 불교계시민사회는 A스님에게 조계종 전법단장의 공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조계종의 부산 B교구는 '용비어천가' 수준으로 특정후보를 찬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치 범어사 스님들이 새누리당 당직자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2월 1일, 공사 중인 이 사찰은 소위 군대에서 많이하는 '평탄화 작업'을 하고 레드카펫을 깔아 영화인들이 걸어오듯이 특정 대선후보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총무 S스님은 캠프관계자에게 "이번 선거가 '초박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초반부터 기울어져 선거가 재미없어졌다"고 말했단다. 이에 오히려 캠프 책임자가 더 당황스러워 하며 "<오마이뉴스>는 '아직 안 기울어졌다'"고 '표정관리'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 정교분리·종교 차별 편향이라는 말을 불교계가 또 꺼낼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2008년 조계종이 앞장서 만든 '종교차별극복, 정교분리준수'라는 20만 명의 대규모 법회는 삼국시대 이래 가장 큰 불교계 대정부비판 모임이었다고 한다. 불과 4년여 만에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불교탄압 내지 차별에 대한 헌법정신을 스스로 파탄내고 있다고 ㅐ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계에서 90%의 영향을 행사한다는 조계종뿐만 아니라 C종단의 부원장 등 주요 소임자들은 지난 11월 27일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 종단 총무부원장인 한 스님을 비롯한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참석해 새누리당은 '태고종 차원의 지지'라고 해석했고 태고종 총무원은 '종단 차원의 지지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개그콘서트>도 놀란 만한 황당한 촌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00만 명이라고 알려진 스님과 평신도 가운데 이 문제에 반성이나 비판이 아직까지 없다. 안타깝다. 종교계 특히 불교계 자정활동이 절실한 이유다.


올 4월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을 창당하고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나섰던 장주스님(전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은 최근 '그린불교연합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6일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대외협력 특보'로 임명됐다.

장주스님은 "그린불교연합당과 새누리당이 정책연대를 한 것"이라며 "지난 총선에서 우리가 3만6000표를 획득했다, 전국 170개 불교종단과 함께 전국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 지난 11월 29일에는 20여개 종단의 종정·총무원장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기원한다"며 공개 지지선언을 했다.


선언문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범불교지도자'라고 칭했다. 또한 각종 조계종이라는 명칭이 들어가 불교계에 이해가 부족한 시민들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지지 한 것처럼 느껴져 혼란을 줄 수 있다. 조계종의 주요한 정치승려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한다고 해도, 영남권의 불자들이 많다고 해도 '시민의식이 있는 재가불자, 출가불자인 스님'은 현명하고 지혜롭다. 소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인 승려, 소수 재가불자들은 박 후보가 불교집안에서 자랐고 불교계를 '착실하게 챙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 무교이고 가톨릭(천주교) 세례명을 받았지만 종정스님에게 법명(불명)을 받은 게 진짜라는 것이다. 이런 헌법파괴·종교특혜 바람이 미칠 불교계의 혼란을 생각하면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2008년 8월과 2012년 12월의 마음이 이렇게 다른 사람이 출가수행자 스님이고, 주요 종단을 이끄는 소임자 책임자라니 '시민'으로서 낯이 뜨겁다. 연탄을 나르고 김장 담그는 이벤트라도 하면서 선거에 종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현실 정치인이 더 예뻐 보이는 게 나뿐일까.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직속기구인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스님)가 지난 11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은 종교단체 혹은 종교지도자의 정치참여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종교계가 정치인의 공약을 검증하거나 정책 제안에 나서는 것에는 '매우 부정적이다'(27.8%), '부정적인 편이다'(38.5%)로 66.3%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종교단체 혹은 종교지도자의 부정선거 감시활동에도 60% 정도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앞서 지난 3월 종교자유정책연구원(대표 박광서)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에 67.1%가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반면, '공무원 공무수행과정에서 특정 종교 옹호 혹은 차별 금지'에 대해서는 7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불교사회연구소는 "이러한 현상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일반적 인식에 근거해 종교의 정치참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있기 때문"이며 "종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대선 이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반성을 해야 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헌법 준수를 외치더니, 이득이 된다면 물불을 안 가리며 헌법정신을 스스로 파괴한 심각한 '공업'을 지은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반적인 의미는 어떤 일을 할 때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불교계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일반인들은 혼자 삭발하거나 가위로 머리를 짧게 자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출가할 때는 스승에게 머리를 맡기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서로 스승과 제자·벗들이 서로 잘라준다.

개인이 잘못한 행동은 쌓이고 쌓여 '자업자득'이 되지만 공동체가 저지른 잘못인 '공업'을 풀어갈 화쟁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한탄스럽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함부로 제 머리를 깎는, 겉모양만 승려인 이들을 '회개'시킬 죽비는 누가 내려 쳐야 하는지... 눈 밝고 지혜로운 이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뒤따라올 사람을 위해 눈밭을 조심스레 걸으라고 했던 스승이 그리워지는 겨울이다. 겨울이 깊어 가면 봄이 온다던 시인도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손상훈씨는 현재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불교 #정교분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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