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에 만개한 눈꽃, 생화처럼 곱고 화려하다.
조종안
설거지를 마치고 서재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올해가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 기념으로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생일은 생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내 생일 날은 축하라도 하듯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그것도 모르고, 오후에 전화해서 '저녁에 동창하고 술 한잔하기로 해서 늦을 것'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어떻게 하면 아내의 서운함을 풀어줄지 고민하다가 지난 10월 하순 형님 내외와 잠깐 들렀던 충남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독배) 사돈댁 젓갈가게가 떠올라서 거실로 나갔다.
"어이, 얼른 옷 갈아입으라고. 오랜만에 하얀 눈길을 걸으면서 데이트 한 번 하게. 자기에게 보여줄 것도 있고.""조금 전 TV 뉴스에서도 오늘이 가장 춥다고 하는데 어디를 나가요. 그냥 집에 있어요. 도로가 꽁꽁 얼어서 운전도 못 한단 말이에요."
아내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끈따끈한 장판을 고수하며 고집을 피울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 어디를 가려 하느냐고 캐물었다. 그러나 가보면 알게된다면서 대답을 미루었다. 집을 나선 시각은 오전 11시 50분,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군산역으로 향했다.
집에서 군산역까지 소요 시간은 15분가량.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대합실에 들어서니 훈훈한 난방열이 부드러운 목화솜 이불처럼 온몸을 감쌌다. 마침 12시 42분 발 용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광천(廣川)까지 승차권 두 장을 구입했다. 요금은 12600원.
용산행 열차는 정시에 들어왔고, 출발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육중한 몸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과 눈꽃이 별천지를 연출하는 금강 주변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군산역 플랫폼을 빠져나온 열차는 워밍업 하듯 금강하굿둑 철교를 지나 하얗게 변한 겨울풍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