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시장, 야시장으로 유명한 팟퐁거리. 그러나 팟퐁은 동남아 최대의 환락가로도 유명하며, 파타야 쪽 보다도 훨씬 위험한 지역으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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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팟퐁을 가잔 말이죠. 저랑 같이."그는 한쪽 알이 깨진 안경을 밀어 올렸다. 땀이 줄줄 흐르는 통통한 얼굴이 약간 상기된 듯하다. 그는 말을 더듬거렸지만, 우리는 호기심과 결의에 찬 눈으로 연신 씀벅거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꼭 가고야 말리라, 그런데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의 안내역을 맡아야만 한다는, 그런 거절할 수 없는 압력을 넣기 위해서였다.
그날 새벽 막 방콕에 도착한 이 인상 좋은 30대 후반의 아저씨를 운 좋게 낚은 것은 방콕에서도 배낭여행자들이 넘쳐나는 곳, 카오산 로드의 한국 식당에서였다. 방콕으로 혼자 휴가를 간다는 들뜬 마음에 여행 전날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한쪽 안경알을 깨먹었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깨진 안경을 쓴 채로 공항까지 달려왔다는 그. 그는 사실 '팟퐁'을 여러 번 가봤노라고 우리에게 막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양반이 여러 번 가봤다는 그 '팟퐁'은 단순한 야시장이나 벼룩시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동남아 최대, 아니 어쩌면 세계 최대의 환락가인 그 '붉은 팟퐁'을 말하는 것이다. 방콕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섹스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때 주 목적지가 되는 곳이 바로 팟퐁이다. 섹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요기로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만 해도 숙소에서 만났던 대학생 3명이 우물쭈물, 그러나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득 찬 눈웃음을 치며 지금 팟퐁에 가는 길이라고 시시덕거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두 명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안경을 깬 아저씨에게 황당한 제안을 했고, 그는 황당하게도 그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여성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헛된 꿈을 버리지 못한 탓에 나는 여행이 끝나면 이런저런 메모를 모아 정리해두곤 했다. 모든 여행이 다 나의 삶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만, 2001년 여자 후배와 단 둘이 다녀왔던 약 3개월여의 동남아 여행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여행도 드물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지역인 동남아, 그것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무엇이 그리도 대단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 여행의 기억을 그처럼 오랫동안 나의 뇌리 깊숙한 곳에 박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일까. 기억의 시작은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쳐 방콕으로 이어진다.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고 북한이 기아에 몸부림 치던 1990년대 후반의 마지막 몇 년을 보낸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당시 동남아의 두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격동적인 변화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베트남 곳곳에 호치민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자칭' 공산당 게릴라가 남아 있었지만, 이미 이 두 나라는 자본주의 깃발을 두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듯 느껴졌다.
베트남에서는 장동건이 대통령만큼이나 귀빈으로 대접받고, 최진실과 안재욱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와 최수종·이승연의 드라마 <첫사랑>이 비디오로 제작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오래된 한국산 차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사람들은 삼성에서 나온 세탁기와 TV를 사고 싶어 안달이었다. 베트남 전으로 인해 '남주띤'(남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지는 않을까 했지만 노파심에 불과했다.
캄보디아는 이제 막 내전이 정리되고 연합정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도 프놈펜의 시민들은 아직도 총을 차고 다녔고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웃통을 벗어던진 게릴라들이 종종 출몰해 여행자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던 시절이다. 말로만 듣던 크메르 루주의 잔당인가 싶어 손을 벌벌 떨며 몇 달러를 쥐여주면, 그들은 돈을 챙겨 넣고 얼른 가버리라는 턱짓을 하곤 했다. 경찰은 단돈 20달러에 자신의 배지와 권총을 팔 수 있다며 접근했고,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한국 식당 주인은 밤마다 몰래 가족들을 이끌고 와서 냉장고를 거덜 내는 종업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아니 우리 둘이 가장 유심히 봤던 이들은 바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여성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