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따지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메일을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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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A씨는 남편(B씨)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B씨가 접속하는 포털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A씨는 남편이 출근하자 메일을 열어보았습니다. 메일함엔 B씨가 다른 여성과 서로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이혼을 상의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A씨는 그 여자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내면서 이메일을 출력해 증거자료로 제출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비밀이 침해당했다며 A씨를 형사고소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혼법정과 형사법정을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A씨는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메일을 열어봤으니 정당방위에 해당하고, 메일 내용도 배우자의 외도라는 범죄행위에 관한 정보이기 때문에 비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게 이름도 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제48조(정보통신망침해행위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에 침입해서는 아니 된다. 제49조(비밀 등의 보호)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해서는 안된다.법원은 법에서 말하는 '타인의 비밀'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B씨의 메일도 사적인 내용이 담긴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외도가 의심되어 메일을 열어봤더라도 "이혼 소송중인 배우자의 이메일을 열람한 후 출력하고 나아가 소송에 증거로 제출하기까지 한 행위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A씨가 초범이고 나쁜 목적이 있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여 벌금 30만 원을 선고유예한다고 판결했습니다(선고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이 지나면 없던 것으로 보는 제도입니다.) A씨가 불복,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2심과 3심 결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는 외도를 의심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메일을 열어봤습니다. 메일에는 수상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상대 여성의 직장 홈페이지에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고 비방글까지 올렸습니다. 법원은 허락없이 메일을 열람한 부분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홈페이지에 비방글을 올린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인정하여 아내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법으로 따지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다는 뜻입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메일을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이건 연인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친이 이별을 통보하자 홧김에 애인의 메일함에 접속하여 메일을 열어보고 삭제·전송한 여성도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자기 집 거실에 몰카를 설치해서 아내를 감시했다면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아내 몰래 거실에 설치한 몰카, 유죄인가 무죄인가 [사례] 출장이 잦은 C씨,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내 D씨의 반응이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외박도 하는 아내를 보니 딴 남자가 생겼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D씨 몰래 집안 거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출장을 갔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촬영된 내용을 살펴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 E씨와 잠자리를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C씨는 녹화테이프를 증거삼아 두 사람을 형사고소했습니다. 그러자 D씨도 맞고소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C씨의 소송으로 부부는 이혼을 합니다. 게다가 D씨와 E씨는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간통했다는 증거가 있으니 현행법상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C씨도 유죄가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판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내의 간통의 의심이 드는 상황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사이라도 사적인 공간은 보호되어야 마땅하고 집안의 거실은 시간 또는 상황에 따라서는 충분히 은밀한 사적영역이 될 수도 있다. 이곳에 24시간 촬영되는 몰카를 설치한 것은 정당행위로 보기 어렵다."(의정부지법 2012. 1. 13. 판결)
C씨에게는 성폭력특별법(카메라등 이용촬영)위반죄가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본 법원은 그에게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형을 내렸습니다. D씨는 이혼 후 C씨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도 제기합니다. 법원은 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몰래 신체를 촬영한 행위는 불법이므로 C씨는 D씨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니 첫 번째 질문에 답이 되었지요. 다음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개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일은 합법일까요, 불법일까요.
제3자가 몰래 녹음하는 경우와 당사자가 자기가 포함된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경우 2가지를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다른 사람 몰래 차량이나 사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해 도청했다면 불법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이걸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라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판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몰래 도청이나 녹음을 한다고 말합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증거로 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법 4조는 "불법검열에 의해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및 불법감청에 의해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불법감청으로 범죄가 될 수 있고, 재판 증거로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화를 녹음했을 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법원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통화내용을 증거로 제출한 사례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볼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즉, 당사자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불법이 아니고 재판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다. 다만 법원에 증거로 낼 때는 문서의 형태(녹취록)로 함께 제출해야 하고 녹음이 편집되거나 조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제3자 간 통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사무실이나 차량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은 범죄에 해당하지만, 당사자끼리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은 불법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증거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여성과 전화나 대화를 하면서 아내가 녹음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랑한다면 비밀을 지켜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