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의 하루착륙 후, 휴식
국인남
급하게 달려가는 남편의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저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 천상 군인이구만. 저렇게 훌쩍 가버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저 서운하기만 했다.
그만큼 군인들은 단순하고 오직 충성이며 조국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투철한 사람들이다. 내 남편뿐만이 아니라 전투조종사들은 조국을 지킨다는 사명과 충성으로 살았다. 공군사관학교 교가에 "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해 미그기가 수시로 남하해서 여러 번 놀랐지만, 이미 각오는 하고 살았었다.
그래도 충성대부분의 전투조종사들은 사관학교를 나와 전투조종사의 길을 택한다. 가장 강한 훈련과 순발력이 우수한 자들로 소수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이 군의 중추부 역할을 감당하며 최고 지도자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전투조종사로서 자부심은 하늘에 이른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이상과 땅에서 사는 현실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어느 곳으로 가든지 열악한 환경과 싸워야했다. 낙후된 아파트 내부는 쥐와 바퀴벌레, 개미가 들끓었다. 또한 습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추위와 더위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다.
겨울 잠자리는 전기장판, 목욕은 순간온수기가 해결책이다. 겨울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욕실을 밀폐시킨 채 아이들을 씻겼다. 그 안에서 목욕을 하다가 쓰러져 생사를 오간 적도 있다. 내 몸이 점점 쇠약해져가며 심장에 이상이 생길 때까지 이산화탄소 중독인지를 몰랐다. 나는 이미 이산화탄소에 중독이 되어 몸이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 년이 지난 후, 남편이 전역하고부터 내 몸이 회복되고서야 병명을 알았다.
어느 해 가을, 부내 내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목사님이 3일간 그곳에서 머물렀다. 몇몇 집이 식사초대를 했다. 그분도 내심 조종사들이 사는 환경이 궁금했나보다. 그래서 초대한 가정에 가보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조종사들이 사는 내부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분노까지 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날 밤 강대상에서 외쳤다.
"내가 서울 가면 다 알릴 것입니다. 세상에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줄 몰랐습니다. 국민을 죽이고 짓밟고 사는 것들은 호화별장에서 별 짓을 다 하고 사는데, 목숨 걸고 하늘을 지키는 전투조종사들을 어떻게 이렇게 살게 할 수가 있습니까? 억울하고 분노가 납니다." 우리가 살았던 환경은 참으로 고달팠다. 그렇게 열악했지만 그 상황을 견디는 것은 꿈을 펼칠 수 있었기에 견디었다. 그러나 그 꿈도 접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예정된 보직 자리가 바뀌어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뒤 바뀐 보직명령에 충격이 컸다. 그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갑자기 핸들을 꺾어버렸다. 이미 아이들을 서울로 전학을 시켜버린 상태였다. 발령지가 바뀌자 난감했다. 우리는 밤새워 고민하다 동창이 밝아올 때쯤 결단했다. 그냥 전역하자는 편으로. 한마디로 군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판단으로 서운함을 안고 나왔다.
홧김에 막상 나와 보니 물질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갑자기 민간인이 되어서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괴리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자가 힘 있고, 많이 가진 자가 살 만한 세상 아닌가. 어느 누구도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군 내부에서나 최고의 조종사로 인정을 받고 살았지, 나와 보니 군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절 군인을 비하해서 '군발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군발이'였다.
솔직한 심정에 전역해 나온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어린 마음에 군이 우리를 배신했다 생각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우리가 군을 배신한 것이다. 보직 자리가 전라도면 어떻고, 강원도면 어떻겠는가. 군인은 명령에 따라 가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그렇게 배신당한 기분만 들었는지. 아마도 사랑한 만큼 미움도 배가 되어 왔었나보다.
세월이지나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그저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에게 빚 진자다. 그때 군에서 맹훈련된 기술로 곧바로 민항공사로 스카우트되어 들어가 오늘에 와 있다. 남편은 여전히 하늘을 날며 군인정신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충성하고 있다.
영원한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