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카키 마사오!
치욕스런 유신독재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생중계되는 공중파에서 이 이름이 그토록 또렷하게 발음되는 순간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12월 4일, 첫 대선후보 TV토론회는 성역과 금기를 마음껏 넘나든 1% 지지율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의 압승이었다.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날카로운 각을 세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상상 그 이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매섭게 몰아쳤다.
"외교의 기본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일입니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아실 겁니다. 한국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는 사대매국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인입니다. 좌경용공으로부터 나라 지킨다면서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습니다. 뿌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1년 전 한미FTA 날치기해서 경제주권 팔아넘겼습니다. 대대로 나라주권 팔아먹는 이들이야말로 애국가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날치기 한 다음에 애국가 부르면 용서됩니까?"거침이 없었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후보가 지지율 과반에 육박하는 유력 후보를 몰아치는 모습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박근혜 후보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면상에서 당해보지 않았을 공격을, 두 시간 가량 꼼짝없이 감내해야 했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진보의 아이콘'에서 '국민마녀(?)'로 전락한 이정희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던 것은 통합진보당 당원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선출마선언 이후에도 대부분의 언론이 외면했던 대통령 후보 이정희는 단 한차례의 토론만으로 무시 못 할 존재감을 과시했다.
토론회가 진행되는 내내 이정희 후보가 거론한 한마디 한마디가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의 상위권에 줄줄이 오르고, SNS에서는 '후련', '통쾌'의 단어가 넘실댔다. 물론 반대편에선 그만큼의 분노가 따라 춤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공공의 적으로까지 등극했던 이정희 후보에게 왜 사람들은 열광했을까?
이정희의 특별한 발언... 세가지 돋보였다 우선, 어느 때보다 쟁점 없이 밋밋했던 이제까지의 대선 과정을 들 수 있다.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후보단일화에 집중했지만, 속 시원히 대립각을 세워오지 못했다. 오히려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공통공약이 많다"며 "이번 국회에서 공동으로 실천하기 위한 '여야정책협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이것은 대통령후보다운 통합적 리더십일 수는 있지만, 반새누리당 후보단일화를 요구했던 대중에게는 밋밋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이정희 후보가 정확히 찔렀다. "어차피 사퇴할 것, 왜 나왔냐"는 박근혜 후보의 질문에 "당신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답변하는 저돌성과 명쾌함은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싸가지 없는 대답이었을지 몰라도, 강렬한 메시지였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