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여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정희 후보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1% 남짓의 지지율로 무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거기에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서 갖춘 논리력에, 젊은 나이에, 정당의 대표를 역임하면서 쌓은 정치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오직 재미의 측면에서만 토론을 평가하자면, 이정희의, 이정희에 의한, 이정희를 위한 토론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에 토론을 시작하면서 주의 깊게 보려고 한 것은 선두 후보를 따라잡아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문재인 후보의 공격을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피해가면서 실책을 하지 않는가였다. 다시 말해 문재인은 점잖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공격해야 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과연 선두 후보인 박근혜는 그동안 보였던 단점인 공식 석상의 말실수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를 곤혹스럽게 하는 묵직한 돌직구들은 이정희 후보에게서 나왔다.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 발언에 박근혜 후보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에게는 안타까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여유로움으로 바라봐야 할 제3후보에게 흐트러지는 표정을 보이는 것은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지자들에게 안타까운 정도였지 토론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실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점잖은 문재인의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를 잘했다. 가령 참여정부 시기에 남북간의 군사적 대립이 없던 사례를 들면서 이명박 정부의 안보 관리 능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였으나, 박근혜 후보는 '퍼주기'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며, 참여정부 시기에 북핵 실험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런식의 가치관이 투영된 질문과 대답은 결정적인 사실 관계의 하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후보 간의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는 식의 스케치성 기사만 쓸 수 있을 뿐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뉴스를 생산해내지는 못한다. 물론 토론 상대방을 제압하기도 어렵고, 추가 질문이 없는 토론회 규칙 상, 큰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초반에 나타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이정희 후보의 날 선 공격에 대한 참신함이 가시면서 토론회 전체가 식상해지고 필자가 하품을 시작할 무렵에 박근혜 후보가 스스로 헛스윙을 해버리는 발언이 나왔다.
박근혜의 헛스윙, 전두환이 준 돈 6억 구구절절 설명 '당선된 뒤에 친인척 비리 나오면 대통령직 즉각 사퇴할 것이냐'는 이정희 후보의 질문에 박근혜 후보는 대답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대답은 훌륭했다. "뭐가 드러나면 대통령직 사퇴한다는 식의 태도는 옳은 태도가 아니며, 그런 정치 공세보다는 얼마나 제도가 마련되었는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가가 대통령의 임무이다"는 요지로 대답을 하였다. 뭐라 나무랄 데가 없는 모범적인 답변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족으로 덧붙인 전두환이 준 6억에 대한 해명이었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해서' 받았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강남 부동산의 대명사인 은마 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돈을 받았다는 이정희 후보의 공세에 대한 답변으로는 대단히 궁색했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후보가 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을 한 것에 있었다. 이것은 바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됐다. 차라리 궁색한 변명만 했다면 다음 날 나올 야당 선대위 대변인의 비난 논평 하나로 끝났을 터인데, 이제 사회 환원의 방법에다가 시기 문제, 또한 당시에 받은 6억원을 현재 돈 가치로 어떻게 환산할 것인가 등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 쟁점을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