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봉에서 바라본 서북쪽 골짜기 풍경
이승철
그러나 산행에 큰 문제는 없었다. 산그늘이 드리워진 응달지대를 지나 능선길에 접어들자 낙엽밑에 숨어 있던 살얼음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능선길에서 첫 번째 만난 봉우리는 갈미봉으로 특별한 느낌이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다시 조금 더 걷자 문너머재 삼거리다.
문너머재에서 왼쪽 길로 빠지면 고창 공설운동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앞쪽으로 이어진 길 저 앞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라보인다. 해발 640미터 벽오봉이다. 약간의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벽오봉은 사방이 툭 트인 전망 좋은 봉우리였다. 오른편 골짜기는 방장산 휴양림이고 왼편 아래 골짜기 제법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는 작은 시가지가 고창읍이다.
봉우리마다 전망이 끝내주는 아름다운 산그런데 벽오봉 가까이에 조금 낮지만 더 멋진 봉우리가 있었다. 행글라이더 활공장으로도 이용되는 억새봉이다. 억새봉은 그 이름처럼 주변이 온통 억새밭이었는데 잔디와 억새가 초겨울바람에 색이 변하여 온통 연노랑색이었다. 억새봉이라 쓰여 있는 표지 말뚝 옆에 서있는 주먹을 불끈 쥔 은빛 팔뚝모형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억새봉에서 바라본 전망도 일품이었다. 산 아래 그리 넓지 않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짙푸른 작은 호수, 정겨운 들녘풍경과 함께 비 그친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겨울 뭉게구름이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 춥다 추워, 바람이 굉장히 거세졌는 걸!"거센 바람에 벗겨져 휙 날려간 모자를 주우며 일행이 어깨를 움츠린다. 정말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낙엽이 져버려 앙상한 나무숲을 할퀴는 초겨울 바람소리가 악마의 절규처럼 소름이 돋게 한다. 능선을 타고 약간 내려섰다가 522봉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