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11월 30일. 사진 속의 장준환씨를 비롯한 고흥생태문화 모임 '느티나무' 회원들이 번가라 가며 고흥군청 앞에서 빈곤층에 대한 전류제한조치 해체와 근본적인 생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송성영
그동안 촛불 화재참사를 다룬 각종 언론보도 기사를 들췄다. 사실 나는 이번 참사가 있기까지 전류제한조치의 속내를 잘 몰랐다. 그만큼 전기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들에 큰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전류제한조치란 전기요금이 2개월 이상 미납된 경우 전기사용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전력을 제한적으로 공급하는 전류제한기를 설치하여 순간 사용량이 220w를 넘거나 일정 전력 이상 사용하면 차단기가 내려가 전력 공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형광등의 소비전력이 36w, 소형냉장고 200w, 텔레비전이 200w 정도임을 감안했을 때 제한조치가 취해지는 220w는 최소한의 생활이 불가능한 전기공급량이다. 이번 고흥 촛불화재참사를 당한 할머니와 손주는 그조차 쓰지 못했다. 전류제한조치가 전기를 전혀 쓸 수 없는 것으로 알고 형광등조차 사용하지 못해 촛불을 켜고 지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다.
각 언론들은 저마다 촛불참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대부분 언론들은 촛불화재참사와 관련해 한전과 지자체와 정부의 복지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11월 23일자)는 남달랐다. <"정부서 전기료 내주기로 했는데…" 한 발 늦은 '촛불 화재 祖孫' 지원>이라는 기사 제목부터 달랐다. 장례식장을 취재했다는 기자는 참사를 당한 피해자 가족의 딱한 사연을 전하면서도 피해자의 딸이자 6살 난 아들의 엄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전날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다 할머니와 함께 화재로 숨진 주모(5)군의 어머니(28)였다. 어머니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재혼해 자녀 둘을 낳았다.처참한 죽음 당한 망자들 앞에서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것을 꼭 밝혀야 했을까? 화마 속에서 화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가벼운 심신 장애가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2010년 9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자활 근로가 조건이었다. 면사무소가 할아버지에게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 한 차례 근로에 참여했다. 수급 자격을 잃은 작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할아버지가 받은 생계비는 모두 2만6440원이었다. 할머니가 식당 일로 벌어온 월수입 10만~50만 원도 소주를 사는 데 주로 썼다는 것이 주민들 얘기다.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을 벌수 있는 기회조차 저버리고 할머니가 벌어온 돈을 소주로 탕진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이웃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할아버지가 소주에 의지해 생활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가벼운 심신 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신장애와 더불어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가 불편해 일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거기다가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이들이 화재에 휩쓸린 것은 고흥군이 전기요금을 내주기로 결정한 다음 날 새벽이었다"라고 밝히면서 "조문객은 관공서 직원 10여 명이 전부였다. 고흥군 사례관리팀 관계자는 '(숨진 주군 집의) 밀린 전기요금을 내주기로 지난 20일 결정했는데…' 하며 허탈해 했다"는 것이다. 고흥군 입장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는 <조선일보>의 논조는 초지일관으로 매듭짓는다.
숨진 주군에게 온정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흥군 주민복지과는 지난 9월 주군 가정을 자활을 유도하는 '사례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일환으로 이달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매달 1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또 30만 원 상당의 생필품과 수산물 세트, 책 등이 국비로 지원됐다. 하지만 너무나 늦은 온정이었다.기사 제목처럼 정부에서 할 만큼 잘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잘 하고 있는 복지정책'을 은근슬쩍 칭찬만 하기가 민망스러웠던 것일까? "너무나 늦은 온정이었다"라고 애처롭게 끝맺음을 한다. 기사에는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나 촛불화재 참사의 도의적인 책임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정책을 잘 펼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참사가 벌어졌다는 논조다.
거기다가 다른 언론 기사들과는 달리 피해자들이 형광등조차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한국전력의 책임은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조선일보> 기사는 전기를 차단한 한국전력이나 극빈층에 대한 배려를 소홀한 고흥군의 책임보다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재혼해 자녀 둘을 낳은 딸'과 '할머니가 벌어온 돈을 소주를 사는데 주로 쓴 할아버지'의 책임이 더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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