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대선후보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유성호
주지의 사실이지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후 대선에서 과반 지지를 획득한 대통령 당선자는 단 한명도 없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1987년 대선에서 단 38.6%를 득표해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도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헌법 제67조 3항에서는 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이상 득표를 당선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단독후보였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득표였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도 김영삼(42.0%), 김대중(40.3%), 노무현(48.9%), 이명박(48.7%) 당선자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물론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완전히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선거라는 제도의 특성상 결선투표제 역시 전체 국민 중 일부의 의사만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는 있다. 투표자의 과반이 전체 선거권자의 과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령 투표율이 100%를 달성하고 결선투표를 통해 어느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를 획득하더라도 50%미만의 국민의사는 허공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선투표제는 민주적 정당성을 구현할 최적의 제도라기보다 실제 투표자 중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민주적 대표성의 '최소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최소한의 기준선이 없을 경우, 대표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결선투표제가 없는 단순다수대표제 상황에서 투표율이 50%이고 여러 명의 후보가 각축하는 가운데 특정 후보가 40%정도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 사람은 국민 10명 중 단 2명의 지지만으로 당선된 것에 불과하다. 놀랄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상당수 사람들이 이렇게 당선됐다. 더구나 국민 10명 중 3명이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 1등 후보만이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더 적은 수의 의사가 더 많은 수의 의사를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비전의 등장을 가로 막는 '단순다수제'또한 결선투표제는 단순히 후보 단일화를 손쉽게 하거나 민주적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선투표제 없는 현행 단순다수제 방식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요구가 제도정치영역으로 투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은 한국 정치 특유의 '적대성의 정치' 상황에서 한층 극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정치는 매 선거 때마다 아무리 '정책선거'를 강조해 왔어도 새로운 국가운영의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이 각축하는 장이기보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가운데 적에 대한 공격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는 형태가 압도해 왔다.
1987년 대선의 비판적 지지와 후보단일화, 1997년의 반민자당 민주대연합, 1997년과 2002년의 반창연대, 2007년의 반MB연대는 모두 진보개혁진영이 독재정당의 후신을 반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려는 시도였고, 반대로 보수진영은 반북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상대 후보를 '제거해야할 내부의 적'인 종북좌파·빨갱이로 분칠해 왔다.
이런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것은 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었고, 새로움에 대한 비전은 부차화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더 좋은가에 대한 '최선 선호 효과'보다 무엇이 덜 나쁜가를 평가하는 '최악 회피 효과'를 만들어냈던 적대성의 정치는 단 한 차례의 투표로 득표율에 상관없이 당선자를 선출하는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그동안 새로운 정치를 추구했던 다양한 실험들이 소위 '사표 심리'와 '전략적 투표'로 인해 꽃봉오리조차 펴보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한국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 이렇게 해보자무엇보다 문재인 후보의 새로운 공약이 반가운 이유는 이번 대선이 역대 어느 대선 보다 재미없다는 푸념이 들려올 정도로 미래를 향한 담론이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후보별 정책 차별성이 없어 후보간 정책 단일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동안의 대선에 비해 흥행요인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선국면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이 오로지 적대성에 근거한 단일화 효과에 압도당했던 상황에서 기인한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두 후보의 지지율 추이로만 대선 흥행을 노리기에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