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어머니 환갑날(1977.11.12). 노란 한복차림 아낙(오른쪽)이 30대 시절 박 아주머니
조종안
박 아주머니는 초중고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의 '형수'다. 1977년 11월 친구 어머니 회갑 잔칫날 참석해서 장수를 기원하는 헌수(獻壽)도 올리고 기념사진도 찍어드리면서 하루를 즐겼다. 1979년 9월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몇 년 후 병환으로 몸져누워있을 때는 문병하러 다녔으며, 돌아가셨을 때는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부의금 접수도 하고, 장지도 알선하는 등 사연도 많고 인연도 꽤 깊다. 그러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박 아주머니는 '서비스 상회', '서비스 분식' 등 50년 넘게 사용한 상호에 '서비스'가 들어간 내력도 알려주었다. 원로가수 최희준의 데뷔곡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가 공전의 히트를 하던 1960년대 초. 구시장 모퉁이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던 반찬가게가 일본을 오가는 기름배에 반찬을 납품할 정도로 번창하여 간판을 달아야겠는데 마땅한 상호가 없어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미료를 대주던 거래처 직원이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를 넣어 '서비스 상회'라고 하면 좋겠다고 해서 지어졌단다.
함께 일하는 젊은 아낙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큰딸 '혜자'(51)라고 해서 놀라웠다. "수줍음 잘 타고 착하기만 했던 여고생 혜자씨가 결혼도 하고, 아들도 둘이나 낳고, 가업을 이었네!"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50대로 접어든 혜자씨도 "처음엔 누군가? 했는데 삼촌이시네요!"라며 따끈한 어묵 국물을 한 공기 내놓았다. 순간 아련한 추억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는 저의 '멘토'이자 미인이고, 여장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