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도 심심했는지 지나가는 올레꾼에게 눈을 맞추며 다가온다.
김종성
고요한 정적으로 가득한 숲속길 올레길은 이제 바닷가와 포구, 어촌마을을 벗어나 내륙의 동복리 마을 쪽으로 인도한다. 올레길의 가이드 간세다리가 가리키는 곳은 무성하다 못해 컴컴한 숲사이 길. 동복교회, 동복리 마을운동장을 지나 김녕농로의 들판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짙은 숲길을 내내 혼자 걸었다.
밀림 같은 숲 속에서 이러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들 때마다 빨갛고 파란 올레리본이 안심시켜 주는가 하면, 꿩들의 원시적인 울음소리가 적막함을 날려주고, 숲속 작은 말목장의 말들이 심심했는지 여행자에게 눈을 맞추고 다가온다.
걸음을 멈추고 명상을 해도 좋고 하염없이 상념에 빠져도 좋을 고요한 정적으로 가득한 숲,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숲속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날씨마저 흐려 어두운 숲은 더욱 그런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민가로 보여 반가웠던 아담한 동복교회, 천연잔디가 깔린 동복리 마을 운동장도 한껏 한갓진 모습들이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쓰다듬고 덩굴이 발목을 붙잡는 우거진 숲이 나타나기도 하고, 산담에 둘러싸인 단정한 무덤을 깊은 숲속에서 불쑥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생기거나 우울해지지 않는 건 동복리 숲길에서 내내 느껴지는 솔향기 은은한 맑은 기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숲길 한가운데 용암이 파도처럼 흘렀던 자국이 보이는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벌러진 동산'이란 안내 팻말의 재미있는 이름에 풋~ 웃음이 터진다.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혹은 넓은 바위가 번개에 맞아 벌어진 곳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넓은 공터와 아름다운 옛길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제주어다운 생생하고 잊기 힘든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