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된 일꾼은 두개의 바구니를 놓고 상품감귤과 기타 등급을 동시에 선별하면서 딴다.
조남희
식사를 마치고 실한 상품 감귤이 많이 달린 귤나무가 있는 쪽을 찾아 농장 구석구석을 훑고 다녔다. 작업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내 손에도 귤이 세 개씩 쥐어져 있었다. 이쯤 되니 귤은 먹는 게 아니라 오직 따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 뒤부터는 무념무상, 무아지경으로 귤만 땄다.
나무 윗쪽, 제일 아래쪽, 바깥쪽 등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달린 감귤을 따니 등을 시작으로 허리가 아프고 점차 팔이 무거워져 왔다. 오후가 되어 그늘이 지니 바람이 세지 않은데도 한기마저 느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힘이 드신지 오전처럼 수다를 떨지 않고 조용히 감귤만 딴다. 하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 내가 "아이고 힘들다" 한마디 소리내기가 부끄러워 꾸역꾸역 조용히 감귤만 땄다.
오후 3시 즈음이 되자 농장 한 구석에 간식이 마련됐다. 둘러앉아 감이며, 고구마, 커피 등을 먹는데, 할머니 한 분이 그러신다.
"힘들지? 어디가 제일 아파?" "등이요.""아이구 이제 좀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럴 텐데? 근데 감귤농사가 농사 중에 제일 쉬운거야~" '아... 네..."
"그런데 아가씨는 언제 갈라구?" "끝까지 해보려고요."저질체력인 주제에 오기만 남은 나는 그렇게 말한 걸 오후 5시 즈음부터 후회했다. 온몸 구석구석이 '감기몸살 예약되셨습니다'를 부르짖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돼도 작업이 종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정도면 밥값은 한 거겠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따 놓은 감귤 박스를 나르느라 정신 없는 농장주에게 목장갑과 감귤따는 가위, 모자를 안겨주고 저녁 약속을 핑계로 농장을 후다닥 뛰쳐나와 집으로 내달렸다. 전기장판 온도를 올려놓고 무겁고 한기가 든 몸을 녹이며 '역시 대평리에서 안 따기를 잘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제서야 일전에 물건을 빌리러 안거리(주인집)를 기웃거렸을 때의 주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당시 아주머니는 "오늘 감귤을 따고 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어느 육지 아가씨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그는 감귤 농장 둘째 아들에게 시집 가는게 꿈이라고 했다. 그에게 이렇게 얘기해주련다.
"일단 해보고 다시 얘기합시다."누워있는데 농장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들죠? 오늘은 좀 쑤실거예요."'예 맞습니다....' 그래도 생각한다. 체력은 달리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리라. 전기장판 위에서 골골대며 눈을 감으니 눈앞에 '나 좀 따 달라'는 듯 주렁주렁 귤이 가득하다. 오늘 밤에는 노오란 감귤 꿈을 꿀 것만 같다. 조만간 재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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