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조재현
"우리가 아무리 증세 얘기하면 뭐해요. 안철수가 증세하자, '건강보험 만 천 원씩만 더 내자'고 했다면 폭발력이 엄청났을 거예요. <안철수의 생각>대로만 했다면 점진이 아닌 도약 방식의 보편 복지도 가능했을 텐데."
지난 23일 오후 홍대 앞 사무실에서 만난 오건호(48)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른바 '복지 증세'에 반대하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생각>과 <약속>(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이 거꾸로 간다며 "사기죄로 고소해야 한다"는 뼈있는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공교롭게 이날 저녁 안철수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대선 후보에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오 실장 역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 실장은 이날 밤 10시 추가 인터뷰에서 "<약속>은 캠프 전문가들이 만든 공동 작품이고 증세 반대도 캠프 내 중론에 따라 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안 후보가) 다시 <생각>으로 돌아가 보편 증세나 '건강보험 하나로' 등을 얘기한다면 재원 문제로 발목 잡힌 복지 논쟁에 다시 물꼬가 트고 복지국가 건설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꺼져 가던 '보편 복지 논쟁', 양자 대결에선 불붙나오건호 실장은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는 중간 복지를 내세운 안철수 후보를 상대하느라 복지 정책 역시 수세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것을 인정한다"면서 "이제 단일후보가 됐으니 복지 소신에 따라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은 국민에게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지난 총선처럼 복지 정책을 피하거나 재원 방안이 명확하지 않으면 박근혜 후보와 기획재정부에 공격을 받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복지 공약을 내서 박근혜 후보의 빈약한 복지를 공격하고 복지국가 후보는 문재인이다, 박근혜는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차별화해야 한다." 과연 박근혜-문재인 양자 대결에선 지금까지 실종됐던 복지 논쟁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건강보험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원조인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 공동위원장을 맡아 '보편 복지'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오건호 실장을 만나 그 해답을 들어봤다. 2001년 민주노총 정책부장을 시작으로 심상정 의원 보좌관, 사회공공연구소 등을 거친 오 실장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복지·재정통'이다.
- 지난해까지 '보편 복지' 논쟁이 뜨거워서 대선에서도 큰 쟁점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복지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대선을 20여 일 앞둔 지금 시점에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쟁점이어야 하는데 단일화 지형이 두 의제를 잡아먹었다. 그나마 경제민주화는 대선 국면까지는 왔지만, 복지국가는 이미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실종됐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해도 무상 급식을 둘러싼 '복지 선거'였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싸움에선 보편 복지가 이겼지만 '복지 재원 확충'이라는 2라운드에서 발목이 잡혔다. 아직도 증세할 거냐 말거냐는 아주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도 '부자감세 철회' 얘기만 하다 이제 겨우 '증세'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이 제시한 조세개정안에 따르면 부자 감세 철회해 봐야 연간 5조 원밖에 안 된다. 재정지출이나 조세 감면을 낮추는 것보다 구체적인 재정 개혁과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 4월 총선 당시 '보편적 복지국가' 정도로 커진 복지 민심에 맞춰 민주당에서도 적극적인 복지공약을 냈지만, 재원 방안이 없다보니 기획재정부에서 검증 공세를 펼친 것이다."
'복지체험' 앱에 담긴 민심은 "복지 증세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