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있는 1518을 위한 <고등어 사전>
메디치
우선 책 제목 <고등어 사전>은 '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어휘를 담은 사전'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고등(高等) + 어(語) 사전>이다. 표지 디자인을 다시 보니 '고등어'와 '사전' 사이에 '개념있는 1518을 위한'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그 어휘(語彙)는 어떤 영역의 어휘일까?
책을 쓴 전대원 선생님은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서 사회 교과의 주요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어 사전이 담고 있는 어휘들은 바로 이 사회 교과 학습에 필요한 기본 개념들이다.
책은 민주주의, 국가 권력, 불평등, 경제학 등 사회 교과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 아홉 개를 선정하여 각각 하나의 장으로 만들고, 강남 좌파, 포스트 모더니즘, 공정 무역, 제국주의 등 각 장에 포함되고, 사회 교과서나 요즘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 75개를 골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요즘에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딱 내 스타일'이다. 각 개념을 2쪽 반 정도의 분량으로 설명하여 지루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그 수준이 가볍지 않다. 편하게 책장을 넘기면서도 얻는 것이 있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딱 좋아할 것 같다.
고등학생이 평가하는 <고등어 사전>그런데, 이 책이 주독자로 생각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이 책의 수준을 어떻게 볼까? 나에게는 딱 맞는 수준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혹시 어려운 건 아닐까? 아니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재미없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간단하게 학생 4명에게 물어봤다. 2명은 내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고, 다른 2명은 떠들며 수업을 방해해 교실 밖으로 쫓겨났던 학생들이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에게 '모르는 개념을 하나만 찾아서 그 부분을 읽어보라'고 했다. 한 학생은 '마키아벨리즘'을 골라서 읽었고, 또 한 학생은 '포스트모더니즘' 항목을 찾아서 읽었다. 학생들의 평가는 이랬다. 수준이 적당하다는 것이었다. 조금 어려운 말도 나오고, 꼼꼼하게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하기는 하지만, 설명 자체는 쉽고 이해하기 편하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키아벨리즘을 읽었던 학생은 교사와 학생 관계를 예로 들어 마키아벨리즘을 설명해 주어서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업 방해죄로 끌려온 학생들도 똑같이 '마키아벨리즘'을 골랐다. 애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하나를 다 읽은 후 하나 더 읽으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와스프'를 골랐다. 이 학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거의 비슷한 말을 했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반응도 똑같았다. 반면 한 학생은 좀 어려운 단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현직 교사가 쓴 책인데다가, 서평까지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본 내용만 쓴다면 이건 입시용 도서거나 대학 면접 대비용 책일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 내용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강남 좌파, 국민 참여 재판, FTA, 감정 노동, 신자유주의 등은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용어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개념들이다. 이미 학교는 다 졸업했고, 정치나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라면 들어는 보았으나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개념일 수 있다. <고등어 사전>은 이런 개념들을 적합한 사례, 구체적인 수치, 관련 자료 등을 동원하여 설명해 준다.
그런데, 저자에 대해 조금 감탄했던 점은 이런 설명에 깃들어 있는 균형감각이었다. 저자는 평소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는 시민기자이므로, 대한민국 사회가 평가하는 저자의 색깔은 진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자는 각 항목을 설명할 때 진보는 이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보수는 이렇게 주장한다며, 양쪽의 의견을 다 싣고 있다. 평소 보수 쪽의 주장을 제대로 찾아서 읽어보지 못했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면이 퍽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