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은 묶이고 모든 운항일정은 취소되고 말았다.
김학용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지만 가이드를 마지막까지 믿어보고자 했던 우리 일행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행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결국 다음날(3월5일) 승선하는데까지는 가까스로 성공을 했다. 폭풍주의보가 완전 해제되지는 않았지만 승객들의 거센항의에 부산 선사에서는 할수 없이 임시선을 투입하여 운행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승선의 기쁨도 잠시, 일행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으며 걷잡을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억만금을 줘도 못할 목숨 건 지옥체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뱃멀미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태어나 한 번도 멀미를 해본 적이 없고, 특히 부산으로 돌아가는 배는 흔들림이 심한 일반적인 배와 비교한다면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만족스러우니 걱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부산행 배를 탔다는 사실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변기통 붙잡고 애원하던 나출발 후 30여 분이 흐르고 망망대해에 들어서자 끝없이 거센 파도가 밀어 닥치기 시작했다. 배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것처럼 전후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여기저기서 뱃멀미 환자가 속출했다. 곧이어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켁켁'거리며 객실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니 의식까지 잃는 사람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서히 몰려오는 뱃멀미에 승객들은 하나둘씩 고통스러워했다. 객실은 멀미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하나둘씩 기둥에 몸을 기대고 가쁜 숨을 내쉬었고, 어떤 이는 큰 대자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다른 전정기관의 발달에 기인한 내 몸을 믿었었다. 아, 그런데 "나는 뱃멀미를 결코 안 함, 나 항구도시 출신임, 물론 바닷가에서 살았음…"이라는 호언장담은 어디가고 슬슬 몸이 이상해졌다. 난생 처음 겪는 이 기분, 속이 울렁이는 메스꺼운 이 묘한 느낌은 뭐지?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복잡해진 뇌세포는 여기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만들었다. 꼼짝없이 선실에서 '자연의 처분'만을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집채 보다 더 큰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니 실로 멀미로 인한 공포가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고, 정신은 하나도 없었다. 아, 변기통을 붙잡고 애원하며 울고불고 하는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사람들이 까만 비닐종이에 '우웩'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냄새는 물론 소리까지 들려오니, 나도 이젠 나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먹은 산해진미를 모두 확인해야 했고, 위액 같은 쓰디쓴 물까지 나왔다. 이건 고통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뱃멀미는 생전 안 해봤으니 예전에 이 고통을 어찌 알았으리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몇차례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 완전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천재지변에도 '깔끔한 뒤처리'는 필수지금 대마도하면 떠오르는 것은? 산해진미도 기암괴석도 아닌 결항의 분노와 지옥을 넘나든 뱃멀미의 고통뿐이다. 결항 한번, 뱃멀미 한번으로 너무 유난 법석을 부린다고 할지 모른다. 물론 기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항이 있을 수 있지만 가이드의 무책임한 발언들과 대처능력을 다시 떠올리자니 정말 치가 떨린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최선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고객은 이에 대한 이해보다는 당장 마주친 불편함에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불가피한 스케줄 변경이 이뤄질 시 '깔끔한 뒤처리'는 필수다.
곤경에 처했을 때 진가가 발휘된다는 말이 있다. 역시 곤경에 처했을 때 여행객을 대하는 태도가 그 여행사의 질을 나타낸다. 태풍이나 폭설 등 기상과 관련된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행객들이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