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Tipi) 아름다운 우리의 보금자리
최성규
LB 아주머니가 사는 집은 친구인 목장주가 무상으로 임대해준 주택이다. 그 친구 목장 크기가 60만 에이커라고 하는데 자그마치 2428 km²라는 엄청난 크기다. 1에이커는 에드워드 1세(1272~1307) 시대에 황소를 부려 하루에 갈 수 있는 땅의 면적을 기준으로 정해진 면적이다. 60만 마리의 황소가 하루에 경작하는 땅의 면적이라고 한다면 웬만한 땅부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가 아닌가. 와이오밍에서 가장 큰 목장이라는데 우리가 오늘 힘겹게 지나쳐 온 지역이 그 목장 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와이오밍의 대다수 목장에서는 소를 키우는데 소 한 마리를 먹이려면 40에이커의 땅이 필요하다. 비효율적인 농토의 이용. 이를 햄버거 커넥션(Hamburger connection)이라는 용어로 풀이할 수 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패티를 위해서는 많은 소가 필요하다. 목축을 위해서 삼림 지대에 불을 질러 초원지대로 만든다. 이러한 목적으로 지금도 아마존의 수많은 밀림이 연기에 뒤덮인 채 타들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의 고객이 증가할수록 아마존은 사라져간다. 겉으로는 전혀 상관성이 없을 듯한 햄버거가 지구의 허파를 무참히 파괴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해가 뉘엿뉘엿 서녘으로 지는 가운데 로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도 여행이 끝난 다음 행로가 궁금하다.
"난 아직 계획이 없어. 포틀랜드에 도착하면 생각해 봐야지. 여러 가지 상황이 있지. 태평양 연안을 따라 샌프란시스코까지 내려갈 수도 있고 바로 버지니아로 돌아가서 일자리를 구할지도 모르지.예전에 일하던 레스토랑이 있는데 종업원으로 취직하면 되거든. 아니면 포틀랜드로 가도 돼. 내 친구가 아는 분의 목장이 근처에 있거든. 거기서 한두 달 목장일 해서 돈을 좀 벌고 또 여행을 갈 수도 있겠지."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되자 우리는 저녁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서로 가진 음식을 꺼내 놓고 각자의 조합을 선보였다. 로스는 또띠야에 피넛버터와 잼을 한꺼번에 발랐다. 반신반의하면서 따라해 보았는데 맛은 상당히 괜찮았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알지? 식빵에다 땅콩 버터를 바르고 바나나 하나를 통째로 넣어 먹는 걸 즐겼대. 나도 먹어봤는데 기가 막혀."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조리법 하나를 나도 공유했다. 또띠야에 살사 소스와 참치를 얹는다. 살사의 매콤함과 참치의 담백함이 어울려 새로운 맛을 낸다. 시식을 해본 로스도 크게 만족한다. 이쯤 되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다.
배를 채우고 우리는 헤어졌다. 로스는 트레일러에 마련된 침대로, 나는 티피 속으로.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그 옛날 인디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바닥에 누웠을 것이다. 반짝이는 별무리가 총총히 눈동자에 와서 박혔겠지. 그래서 그들의 영혼도 밝게 빛났나보다. 나는 평소에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던가?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7월 11일 수요일Lamont, WY - Lander, WY91mile = 146km라몬트(Lamont)를 출발해 쉼 없이 페달을 밟는다. 오후 3시경이 되자 다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북동풍이 몰아치면서 북쪽을 향해 가는 데 큰 지장이 생긴다. 시속 13, 14마일이 순식간에 3, 4마일로 떨어지면서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바람결에 썩은 냄새가 실려와 코 끝을 자극했다. 바람만 감도는 황야에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옆으로 누운 채 썩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랜더(lander)까지 9마일 남겨 둔 지점, 자전거를 잠깐 세운다.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숨고르기다. 여전히 위세가 대단한 바람이 우리 곁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로스 곁으로 밴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췄다. 잠깐 동안의 대화를 끝내고 로스가 내게 손짓을 한다.
"이 아저씨가 태워준대."차량의 뒷문을 열었더니 널따란 수납공간이 드러났다. 앞바퀴와 페니어백을 모두 떼어낸 다음 자전거를 차곡차곡 포개어놓았다.
그의 이름은 콜비(colby). 'fat fish racing'이라는 산악 자전거 팀에 속해 있는 라이더다. 역시 라이더는 라이더를 알아보는 법. 랜더 시가지까지 우리를 태워준 콜비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작별인사를 했다. 로스는 그를 '쿨 가이'라며 치켜세웠다.
콜비 아저씨 말에 따르면 이번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국제 산악인 축제(International climbers festival)가 열린다. 미국 전역에서 산악인들이 모여드는데 근처 산을 오르거나 유명 산악인을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기도 한다.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원에 텐트를 치고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은 드문드문 빈 곳이 눈에 띄지만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예정이다.
공원 한쪽 야외무대에서 연극공연이 한창이다. 불과 20명 남짓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연출중이다. 배우와 관객의 수가 엇비슷하다. 극의 결말에는 등장인물이 모조리 다 죽어야 한다. 여전히 살아서 설왕설래를 펼치는 배우들을 보니 끝나기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