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정책네트워크에 합류하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안 후보와 손을 잡고 있다.
권우성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 추진기구와 관련한 구상을 밝힌 바가 아직 없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는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의 설치를 공약했다. 이는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밝힌 것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 무수히 많았던, 그리고 대체로 유명무실했던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들의 경험을 보면 이것이 효과적인 방안인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대통령과 관계 장관들이 참여한다고 해도 집행력이 없는 자문위원회일 따름이기에 정책 추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동북아시대위원회나 녹색성장위원회가 과연 어떤 성과를 냈는지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후보 자신이 경제민주화 집행기구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한 바는 없으나, 최근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경제민주화기본법'을 준비하여 입법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법안에는 총리직속 합의제 행정위원회로서 경제민주화위원회를 설치하여 경제민주화기본계획의 수립 및 시행을 담당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행정기구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안이지만 필자가 공청회에서 밝혔듯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이해상충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이 정도 위상으로는 경제부처의 저항을 극복하고 부처간 이견을 조정해 낼 힘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공청회에서 필자는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구로 설치하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 중소기업청 등 경제민주화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큰 정부기구들을 그 산하에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때 재계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해온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하여 여기에 사회경제적 약자의 목소리가 대폭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동시에 국회에도 예결위와 같은 상설특위로서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에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본 결과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다양하게 감지되는 경제관료들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저항 움직임을 보면서 더욱 강력한 경제민주화 집행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경제민주화 이슈 관련 내부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과 배치된다는 낡은 인식에 기초해서 정치권에서 나온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재계의 입장을 판박이처럼 되풀이하며 온통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가히 모피아의 본질을 드러낸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기재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을)… 방치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좌초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필자는 모피아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서 과거 국가주도 산업화 시대의 경제기획원에 필적하는 위상과 권한을 갖춘 '민주경제원'의 창설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가주도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이를 총괄하도록 창설한 부처가 경제기획원이었다. 경제기획원은 국가주도 산업화를 기획하고 각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였으며, 이러한 기능을 실질적인 권한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산편성권을 가진 막강한 선임부처였다. 스테판 해거드를 비롯한 상당수의 학자들이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면서 경제기획원이라는 제도를 중요한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 시기에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은 아니었다.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재벌독점과 노동탄압, 지역간·계층간 불균형 등 심각한 경제왜곡과 모순을 만들어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경제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경제적 모순의 심화가 군사독재정권의 종언을 초래한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개발독재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직선제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시대에 경제정책의 사조에 있어서는 개발독재 하의 국가주도 관치경제를 민간주도 시장경제로 개혁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는 분명 필요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벌과 같은 경제권력을 규제하며 노동자와 같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직선제 민주주의 하에서 재벌개혁, 노동권 강화, 복지와 재분배 등 경제민주화 요구는 힘을 받지 못하였고, 시장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득세하였다. 이렇게 된 까닭으로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미국주도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횡행한 시대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IMF 위기로 인해 우리는 그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사정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이 직선제 민주주의의 정치적 한계였다.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독재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권력싸움 위주의 정치문화가 형성된 데다가,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정치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 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경제권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권력이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책이 득세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민주경제원' 만들어 모피아 제압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