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부산물 모으는 통과 톳밥마을밥상 뒷편 광에 밥상부산물을 모으는 통. 음식 부산물을 통에 넣고 옆에 마련해놓은 톱밥을 뿌려주면 된다.
주재일
서울과 홍천 사이에 밥상부산물을 옮기는 일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퇴비를 생산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부산물을 받아 퇴비를 만든 윤희님은 "부산물을 보면 요즘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안다"고 말합니다. 서울 사는 사람에게는 못 먹는 것이지만 농사꾼에게는 좋은 주전부리가 될 만한 음식도 버려지는 게 확인되기도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밥상 지기로도 일하고 있는 한영님은 "홍천에서는 호박씨 같은 것도 버리지 않고 말렸다가 까먹거나 요리할 때 넣는다"고 합니다.
삼백 리나 떨어져 있어도 밥상부산물을 보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퇴비가 되기는 했지만, 왜 이런 음식을 먹지 않고 버리게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겠지만, 이러한 농부들의 조심스러운 나눔은 도시 사람들에게 '쉽게' 버렸던 내 삶을 회개하게 하는 살아 있는 설교가 됩니다.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먹지 못하고 그대로 버렸던 일들이 생각나 부끄러웠습니다. 냉장고가 있어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만큼 불필요하게 쌓아놓고 살다가 주체하지 못해 버리는 일도 많습니다. 늘어나는 냉장고 용량만큼 내 식탐도 늘고 나눔 대신 버림이 훨씬 많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농부가 되면서 쓰레기로 버리던 것들이 퇴비가 되고 흙을 살리고 도로 내 밥상에 오르는 경이로운 체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부산물과 농산물이 도시와 농촌을 오가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사는지 훤히 아는 스승 같은 친구들도 얻었습니다.
얼마 전 퇴비더미 옆에 심지도 않은 호박 줄기가 뻗어났다고 합니다. 또 밀도 몇 포기 자랐다고 합니다. 음식부산물 속에 섞여 있던 밀과 호박씨가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생명은 그렇게 버려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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