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살이 곤충들의 사생활> 표지 사진
지성사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조금은 엉뚱하게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정부희 박사의 글과 사진을 지성사에서 출판한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은 버섯을 삶의 토대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버섯살이 곤충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연구기록, 생태계 보고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고가 들어가 꼼짝없이 관리소 직원한테 붙잡혔지요. 그 아까운 버섯은 다 빼앗기고, 법대로 처벌을 하겠다며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랍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잡혀 있었습니다. "국내에 달랑 한 사람밖에 없는 버섯곤충 연구자다, 이 버섯 속에 사는 곤충이 누군지를 알아내면 그게 바로 세계 기록이 된다. 이제 우리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자연 자원을 찾아낼 때가 되었다"며 선처를 부탁했지요, 정말 공손하게…. 하지만 돌아오는 건 범죄자 취급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서러워 1시간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고 또 울었습니다. - 10쪽, '저자의 글', '버섯살이 곤충과 평생의 동행을 꿈꾸다' 중
정부희 박사는 '저자의 글'을 통해서 스스로를 '국내에 달랑 한 사람밖에 없는 버섯곤충 연구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버섯곤충을 연구하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빈약한 연구자료, 척박한 연구 풍토, 곤충에 대한 빈곤한 이해, 모자라는 여건, 궁핍한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게 한 발 앞서서 가는 연구자들이 극복해야만 하는 유·무형의 장벽이자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맞닥뜨리는 현실을 극복하며 일군 연구결과로 맺어낸 저자의 글과 사진은 재미있고 진지합니다. 한편의 에세이 같기도 하고, 시공을 초월해가며 버섯살이 곤충들만을 닥닥 긁어모아 꾸린 화보집 같기도 합니다.
어떤 곤충의 사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은 순정소설처럼 부드럽고, 어떤 광경을 묘사하는 글귀는 서정시를 읊조리는 문학소녀의 청순함이 연상되는 문체입니다. 짝짓기하는 곤충을 슬쩍 건드려보는 마음은 곤충들의 연애를 방해하는 훼방꾼의 마음, 장난꾸러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곤충들의 사생활이 마이크로필름 영상처럼 가지런하게 담겨훔쳐보듯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관찰한 이야기 속엔 버섯살이 곤충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 나름대로 겪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그들만의 생로병사가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영상처럼 가지런하게 담겼습니다.
멋진주거저리와의 첫 만남은 어느 늦은 봄날, 삼색도장버섯을 뒤적이다 영화처럼 낯선 곳에서 이렇게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그 벅차고 설레는 기분은 절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설렘처럼…. - 44쪽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녀석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알아냈습니다. 관찰을 끝낸 뒤에는 녀석을 다시 숲 속으로 돌려보냅니다. 정이 담뿍 들었지만 녀석들이 살 곳은 숲이니까요. - 67쪽먹을 수 있는 버섯, 먹어서는 안 되는 독버섯 정도로만 생각했던 버섯들이, 어느 버섯살이 곤충에겐 둥지를 틀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산란의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