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정치쇄신안, 현실성 담보해야

책임총리제는 정치개혁일까?

등록 2012.11.13 10:43수정 2012.11.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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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새정치 공동선언팀(공동팀장 정해구·김성식)'이 2차 실무협상을 벌인 뒤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남용을 막고 기득권을 내려놓기 위해 국무총리의 인사제청권과 장관 해임 건의권을 헌법대로 확실히 보장하기로 의견을 접근했다"는 발표를 보고, 잘 모르는 것이 있어서 헌법을 찾아봤다.

우선은 국회의 동의를 받지만 국민의 일차적인 민주적 통제하에 놓여있지 않은 임명직 국무총리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 별로 민주적인 발전인 것 같지 않아서다. 둘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거가 (정부조직법이 아니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취지와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86조는 국무총리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즉,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말해 여소야대, 혹은 겨우 여당이 과반이 넘는 국회라면 대통령과 국정철학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국무총리로 임명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게다가 87조에 따르면 국무위원(대체로 각 부의 장관들)은 국무총리의 제청이 없으면 임명할 수 없고, 또 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 할 수 있다.

미국의 부통령이 누구냐, 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직책이라면, 한국의 국무총리는 실질적 권한을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측면에서 더욱 강한 권력을 보장받는 직책이다. (적어도 헌법상으로는)
이러한 강력한 국무총리제는 사실 일반적인 대통령제나 내각제와는 판이하고 유럽의 이원집정부제 국가과도 많이 다르다.

그 연원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제헌헌법과 발취개헌 과정에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결합되면서 국무원제도, 국무총리제도가 생겨났고, 이것이 3, 4, 5 공화국을 거치면서 존속하였다가 (어차피 별 의미가 없었으므로) 87년 헌법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발췌 개헌을 포함해 9차례의 제정·개헌 중에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두 번 모두에서(1960, 1987) 국무총리의 권한이 강해졌고, 또한 강력한 권한에 걸맞게 국민과 의회에 대한 책임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즉, 두 헌법 모두 독재의 종식을 당면 과제로 한 헌법이었으므로, 권력 분산의 의미로서 총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87년 헌법의 취지를 살펴본다면 의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들의 임명, 해임에 대해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전통적으로 강한 행정부를 이용한 대통령의 독주를 의회가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통해서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국무총리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못 할 경우에 대비해 헌법 63조를 통해, 의회가 국무총리를 사실상 해임할 수 있도록 했다. 요컨대, 대통령과 의회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직책이라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에게 임명되지만 사실상 의회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 제기될만한 몇 가지 논점을 살펴보자.

우선 원칙적으로 국무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보장하는 것은 헌정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 정치개혁의 일부가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하다는 일반의 견해에 비추어 총리 권한의 강화는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고, 또한 당면한 정치개혁으로서 국민 정서와 일치한다.

셋째, 그러나 행정부와 대통령 간의 권력 균형을 위한 장치로서 강한 국무총리는 대단히 강력한 공직자가 국민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민주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넷째, 게다가 권력 분점과 민주주의는 결코 같지 않으므로 이러한 기능주의적, 정치공학적 장치는 그것을 운영하는 당사자들에 의해 임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 당사자가 대통령과 국무총리만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가령, 민주적 통제력이 약하고 순전히 기능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위의 두 이유 때문에 '좋은 선례'를 정치적 발전의 기반으로 삼는 전통이 약한 나라에서는 실제로 잘 작동하기가 어렵고, 실제로도 그래왔다.

결국 여기선 원칙적 타당성 (Validity in Principle)과 실질적 비현실성 (Practical Implausibility)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쪽을 따를 것이냐 하는 고민이 남는데, 대체로 나의 입장은 후자을 따르는 쪽이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생각하고, 사실은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안-문 (위에서는 문-안이라고 했으니까) 두 팀의 합의에는 '헌법대로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만 들어있지만, 실제로 '헌법대로' 하면 국무총리에 대한 의회 책임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현재의, 대통령의 임기와 상당기간 겹치는 새누리당 과반 의회가 사실상 국무총리를 임명에서 해임까지 좌지우지 해야 맞다는 뜻이다. 물론 새누리당도 여론의 눈치를 보아야 할 것이니까, 헌법적 권한을 과도하게 남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희망?)하지만, 이것이 원칙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상당한 정쟁의 꼬투리가 될 여지는 충분하다.

미국식 용어를 빌리자면 허니문 기간에 해당하는 정권교체 이후 새로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한 집권 초기가 국무총리 임명 문제로 거의 국정 마비 상태에 돌입했던 1998년의 사태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여기에는 전혀 없다.

이것을 멋지게 해결할 복안을 '새정치 공동선언'팀이 이미 준비해 놓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 단지 나의 오만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이 '선언'팀이 정말 '선언'에만 책임을 질 생각이라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도 있다는 점을 잘 헤아리면 좋겠다.

요컨대,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실제적인 결과를 좌지우지할만큼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안철수 #새정치 공동선언 #책임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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