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6년 동안 아내의 일벗이엇던 호미와 새로 사온 호미를 나란히 두고 기념촬영. 손잡이도 그렇지만 날이 닳은 점은 비교된다.
홍광석
풀을 베는 데는 낫이 유용하고 땅을 파는 데는 괭이, 흙을 쳐올리는 데는 삽만큼 효율적인 농기구가 없다. 때문에 제 몫의 일을 가진 농기구를 두고 어느 것이 최고라는 찬사를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늘밭 참깨밭 콩밭의 작은 풀은 삽이나 괭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거진 철쭉의 비좁은 틈에 숨은 풀을 찾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일도 삽이나 괭이가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풀의 허리를 베는데 능한 낫도 풀의 뿌리는 뽑는 데는 호미를 따르지 못했다.
호미의 장점은 다른 농기구에 비해 작고 가볍다. 그런 호미는 사람들에게 크게 부담을 주지 않아 주로 사용하는 여성들이 종일 김매기를 해도 다른 연장에 비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또 호미는 주인의 뜻을 거슬려 낫처럼 살을 베거나 삽이나 괭이처럼 주인의 발등을 찍고 주변 사란의 머리를 때리는 일이 없다. 설사 미련한 주인이 해찰하다가 손등을 찍어도 큰 상처를 남기지 않은 조심성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호미의 절대적인 미덕은 뭐니뭐니 해도 주인에게 순종하는 점이라고 본다. 작고 가벼운 몸으로 주인의 손이 되어 날래게 움직여 풀을 잡는 모습은 몇 마디의 칭찬으로 부족할 것이다.
순하고 착한 호미 작지만 제 할 몫의 일이 있기에 호미는 오래도록 이 땅을 지켜왔고 기계화된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6년을 아내의 손노릇을 해준 호미를 오늘 퇴역시킨다. 이미 닳은 괭이, 날이 빠진 낫, 자루에 금이 간 삽이 있지만 손잡이가 없는 호미는 더 쓸 수 없기에 숙지원의 역사를 담은 유물로 보관할 작정이다.
"모든 사람에게 삽이나 괭이 같은 존재가 되라고 하지 말자. 쓰임새가 다른 농기구들의 조화가 우리 밥상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 다른 농기구에 비해 체구가 작고 가볍지만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결코 얕봐서는 안 되는 호미, 따뜻한 밥과 맛있는 찬을 먹기 전 가끔은 농부의 손에 들려진 호미의 수고를 기억하자."
당당하게 퇴역하는 호미를 위해 짧은 송사(頌辭)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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