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노당1리 마을회관 옆 은행나무(위)와 고인돌(아래)
남병직
은행나무와 마을회관 사이의 널따란 공터에는 벽돌로 담장을 두른 작은 비석과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비석은 묘지 돌로 쓰이는 오석(烏石)에 서너 문장을 음각하여 새겼는데, 한자에는 워낙 까막눈이라 인근마을의 효자나 열녀를 기리는 비석으로 어림짐작해 볼 뿐이다.
비석 곁의 커다란 바위는 검은색의 푸석푸석한 질감으로, 이와 같은 돌들은 경북북부지방의 답사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들이다. 바위 표면에는 드문드문 얕은 구멍을 뚫은 흔적이 패여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양식인 고인돌이 아닐까 조심스레 가늠해본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관상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지상에 4면으로 판석을 막아 묘실을 만든 후 그 위에 덮개돌을 덮은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지하에 묘실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덮은 후 돌을 괸 모양이 일반적이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에 집중되어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에 분포하므로, 과거에는 이들을 각각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이러한 분류방식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최근에는 고인돌의 외관적 특성에 따라 탁자식(기존 북방식)과 바둑판식(기존 남방식) 고인돌로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고인돌 하부를 파낸 후 지하에 매장주체를 두는 바둑판식의 경우, 실제적인 발굴조사 전에는 대상유적의 성격을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모진 비바람 속에 수백 년의 시간을 꿋꿋이 버텨온 고목과 그보다 더 오랜 수천 년의 세월을 홀로 감당한 바윗덩이는, 이 땅을 살다간 이름 없는 옛 조상들의 지난 삶을 한마디 말도 없이 온몸으로 웅변하는 것만 같다.
뜻하지 않은 답사길의 즐거움, 단구서원의 모과와 귀래정의 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