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 능행도수원 화성행궁 내에 그려진 정조대왕 능행도.원내가 정조대왕을 태운 말이다. 왕의 행차도에서 용안이나 어진 등 왕의 실체는 생략한다.
장유근
특히 정조임금의 친위부대 무사들인 장용영의 무사들이 무예24기를 통해 내뿜는 근거리(25m) 사법에 노출된 목표물은 둥근 화살촉 임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정도로 굉장한 파워가 느껴졌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깃 소리가 이는 듯 순식간에 목표물을 관통하는 것이다. 화살이 통쾌하게 목표물을 맞추는 순간 순식간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원 화성으로 1박 2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꼭 체험해 봐야 할 게 국궁체험과 무예24기 공연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요걸 빼놓고 수원 화성 200% 즐겼다고 말할 수 있겠나.
요즘은 근거리부터 장거리까지 망라하여 어디 숨을 곳조차 없을 정도지만 서양에서도 활은 한때 최고의 무기였다. 궁사는 최고의 저격수란 말일까. 작가 귄터 블루멘트리트(Gunther Blumentritt)는 그의 저서 <전략과 전술(Strategie und Taktik, 부제 : 페르시아전쟁에서 핵전쟁까지)>(1960년)에서 활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었다.
당시 장사정 무기는 활(궁사)로서 그 사거리는 150보, 즉 130m에 불과(*동서양의 거리 차를 느끼게 된다.)하였다. 현재 우리는 장사정 거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치 개념을 염두에 두고 고대 연구에 임할 필요가 있다.(1813~15년 해방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보병 화기의 최정 사정(거리)은 150m 불과했다.) 민활한 아시아산 말을 탄 아시아 궁수는 100보 내지는 150보 되는 거리내에서 팔랑스를 공격하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적 궁수의 사정권인 100보 내지는 150보 되는 구간은 최대한 신속하게 속보로 돌진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수원 화성의 연무대에 들러 체험한 국궁 활쏘기 체험의 실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무기였으며, 50보는 물론 100보 150보 내외에 위치한 가상 적을 순식간에 살상할 수 있는 무기였던 것이다. 활(궁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적 궁수의 사정권 돌파기술을 언급했겠는가.
정조임금 당시의 조선국이나 유럽에서 조차 100보나 150보 거리를 사정거리에 둔 걸 보면, 활 시위를 떠난 화살의 살상거리는 대략 150보 거리(145m)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근거리에서 쏘아 본 영점사격의 위력은 150보 바깥의 과녁보다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던 매우 흥미진진한 게임이었다. 그렇다면 정조대왕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무사들이 무예24기를 통해 쏜 국궁의 모습은 어떨까.
정조대왕의 친위부대 장용영 무사들의 활쏘기(사법)은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