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스님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번지의 인각사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완료했다. 사진은 5차 발굴이 진행 중인 인각사의 뜰을 찍은 것이다. 2009년의 풍경이다.
정만진
기록하지 않으면 인간의 역사는 사라진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나라의 내력도 그렇다. 가장 단적인 사례는 이순신과 원균이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남겨 국사 속에 자신의 입지를 구축했지만, 원균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전적으로 남들의 '칼'에 내맡겼다. 만약 원균도 왜란의 과정과 자신의 생애를 글로 남겼더라면 그에 대한 세간의 왈가왈부는 지금과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남기지 않았으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칫 우리는 <삼국사기>식의 사대주의 역사관에 매몰된 한심한 민족으로 각인되고 말았을 수도 있다. '단군신화'도 없고, '향가'도 없는, 주체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일연, 일흔 넘은 고령에 <삼국유사> 집필 시작일연이 <삼국유사>를 기초하기 시작한 것은 스님의 나이 일흔을 넘긴 고령 때였다. 일연은 역사서를 쓰는 데에 6∼7년을 바쳤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30세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70세가 넘은 고려의 '국존(國尊)'이 그 나이 때부터 80세에 이르는 세월 동안 엄청난 내용과 분량의 역사서를 집필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함부로 '내가 이 나이에' 운운하는 태도는 일연 스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