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변리사는 특허침해 민사사건 대리권 없다"

변리사 16명이 소송대리권 허용해야 한다며 낸 소송 패소

등록 2012.10.30 15:08수정 2012.10.30 15:08
0
원고료로 응원
변리사는 특허 등의 침해를 청구 원인으로 하는 침해금지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 등과 같은 민사본안사건에서 소송대리권이 없어 소송대리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민사본안사건의 소송대리인은 변호사만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이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특허 등 침해로 인한 민사본안소송에 대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둘러싼 오랜 논쟁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이름을 딴 '백남준 미술관'을 상표 등록한 H씨는 지난 2008년 경기문화재단이 용인시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건립하면서 간판과 옹벽 등에 자신이 만든 '백남준 미술관' 표장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상표권 침해금지 및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민유숙 부장판사)는 2010년 2월 H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백남준은 전 세계 어디어도 자신의 성명을 이용해 상표를 출원하지 않았는데, 원고는 백남준으로부터 단순히 대구에서 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에 대해 명시적인 허락을 받았을 뿐임에도 이를 근거로 80종이 넘는 상품을 지정상품으로 한 등록상표를 출원해 등록받은 후, 백남준의 성명에 관한 권리는 자신만이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백남준의 동의 없이 출원된 이 사건 등록상표에는 상표법에서 규정하는 공공이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는 상표에 해당하는 등록무효사유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가 백남준의 생존 당시에는 피고에 대해 등록상표에 기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다가, 백남준이 사망한 이후 비로소 피고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립한 '백남준 아트센터'에 관해 권리를 주장하는 점에 비춰 보면, 원고의 피고에 대한 상표권 행사는 등록상표에 관한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H씨가 항소했는데,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을 역임한 고영회 변리사 등 변리사 16명은 상표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이 사건 H씨의 민사본안소송에서 소송대리인으로 선임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들 변리사들은 "변리사법에 의하면 변리사에게 상표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민사본안소송에서의 소송대리권을 허용하고 있고, 실제로 변리사가 행정소송 및 특허침해소송에서 소송대리인으로 소송을 수행해 소송대리권을 인정받은 선례들이 있다"며 "상표권 등의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민사본안소송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5민사부(재판장 황한식 부장판사)는 2010년 11월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유지했고, 변리사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리사들이 들고 있는 선례들은 모두 행정사건이나 보전처분사건에 관한 것들이어서 이 사건과 같은 민사본안소송에서의 선례라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민사본안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재까지 대부분 법원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변리사에게 특허 등 침해로 인한 민사본안소송에서 소송대리권을 허용할 지 여부는 입법자의 결단에 달린 문제로, 국회의 명확한 입법적 결단이 있기 전까지는, 변리사법 제2조 및 제8조만으로 민사본안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허용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이 사건에서 변리사들에게 원고의 소송대리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고영회 변리사 등은 "민사소송법 제87조 중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부분에 '변리사법 제8조에 따라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하는 변리사'가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한 결과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에서 소송대리를 할 수 없게 함으로써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 등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2010년 1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특허권 등의 침해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제한하는 변리사법 제8조가 변리사들의 직업의 자유 및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기각하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백남준 미술관'을 상표 등록한 H씨가 경기문화재단을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상고를 각하했다고 30일 밝혔다. 쉽게 말해 소송대리권이 없는 변리사들이 소송대리인으로서 상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먼저 "민사소송법 제87조는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라고 정해 이른바 변호사 소송대리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정하는 변리사법 제8조에 의해 변리사에게 허용되는 소송대리의 범위 역시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대한 심결취소소송으로 한정되고, 현행법상 특허 등의 침해를 청구원인으로 하는 침해금지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 등과 같은 민사사건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러한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이 사건 상고장은 고영회 등 변리사 16인이 원고의 소송대리인 자격으로 작성·제출한 것으로서, 결국 이 상고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대리할 수 없는 사람이 대리인으로 제기한 것"이라며 "그렇다면 이 사건 상고는 민사소송법 제87조에 위배돼 부적법하다"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백남준 #변리사 #소송대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5. 5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