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를 지은 무왕과, 그의 왕후가 된 선화공주의 무덤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연등마을에 '익산 쌍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정만진
향가도 처음에는 4구체로 시작되었다. <서동요>, <풍요>, <헌화가> 등 민요조의 향가는 짧다. 그러다가 <처용가> 등을 거치면서 8구체가 되고, 사상이 점점 오묘해지거나 정치적이 되면서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안민가>처럼 10구체가 된다.
시조도 처음에는 3행이었는데 할 말이 많아지자 연시조도 되고, 한없이 길어져 사설시조도 되었다. 그리고 가사도 되었다. 시인 듯 산문인 듯 구분이 잘 안 되는 갈래로 자꾸만 늘어난 것이다.
짧은 노래는 솔직하고 전파력도 강하다소박하면 수준이 낮은 것일까. 아니다. 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핵심을 간파하고 있는 식자(識者)다. 제대로 모를수록 어려운 개념어, 외국어를 섞어서 쓴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게 말과 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미 말과 글의 본질을 벗어난 '오발탄'을 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식론은 상대가 알아듣게 설명할 줄 모르면 스스로가 모르는 것이라고 갈파한다.
말과 글은 '나'의 마음과 생각을 '남'에게 알려 '나'의 뜻하는 바를 이루려는 인간 행동이다. 짧게 말하고 뜻을 이룬다면 그야말로 경제적이다. <오관산>과 <사모곡>을 읽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이는 없을 터이다. 게다가 짧으니 '백성'들이 기억하기 좋고, 결과적으로 널리 퍼뜨려진다.
나무로 작은 새를 새겨 / 벽에 새집을 파서 거기에 두었네 / 이 닭이 꼬끼오 울 때까지 / 어머니 오래 오래 사십시오호미도 날이지만 / 낫만큼 들 리가 없습니다 / 아버지도 부모이지만 / 어머니만큼 사랑하지는 못합니다노래가 지어지고 불렸던 고려 시대 당시는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백성'들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았다. <사모곡>의 고향은 대강 '우리나라의 농촌'이라는 뜻이다. <사모곡>은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오관산>도 마찬가지다. 문충은 자신의 어머니를 노래했지만, 이 노래가 당시 널리 애창되고 지금껏 창작 배경이 전해지는 것은 '백성'들의 공감대를 얻은 덕분이다. 문충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백성들도 '어머니'가 늙어가는 것이 안타깝고, 그래서 '나무로 만든 닭이 울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건강하게 살아 계시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