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인민지원군에 보낸 감사휘장들
겨레하나
'미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조선을 돕는' 전쟁. 짐작만으로도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기록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의 역사 앞에서 누구는 궁금함에 귀를 쫑긋 세웠고, 누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에게 한국전쟁 참전은 항일전쟁과 사회주의혁명을 도운 '조선'이라는 혈맹에 대한 예를 다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1840년 아편전쟁에서 시작해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나기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양열강과 일본에 의한 100년간의 식민지배 역사를 되풀이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듯했다. 참전을 망설이던 중국이 연합군의 원산 진출에 위협을 느끼고 참전을 결심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서로 적이 되어 3년을 피흘리며 싸운 전쟁이기에 그 역사의 앙금을 모두 털어내고 치유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아직 진행형이 아닌가. 한국전쟁이 진정한 종료를 알리는 날, 한국전쟁에 대한 모든 기록을 털어놓고 진정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재조명해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동북공정으로 사라진 고구려의 성, '박작성' 아쉽지만, 강렬했던 항미원조기념관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단둥에서의 마지막 코스인 박작성(泊灼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작성은 고구려의 성 중의 하나로, 단둥 시에서 4km 떨어진 호산(虎山)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옛 고구려의 박작성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 과정에서 박작성은 고구려의 옛 성이 아니라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으로 탈바꿈 된 지 오래(1990년)이며, 그 이름도 '호산장성'으로 명명되었다.
동행한 해설사에 따르면 "성곽의 방향이나 축성법이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키겠다는 것인지조차 설명이 안 되는 엉터리로, 옛 성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쌩짜로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 언뜻 봐도 급조된 것이 분명한 '짝퉁' 성곽을 오르면서 내내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