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5]탑곡 부처바위 남면 보살상과 승려상
남병직
부처바위의 동면을 감싼 투명한 햇살이 어느덧 길게 기울어 남쪽 사면에 부서진다. 삼존불 앞 커다랗게 놓인 듬직한 바위에는 깊은 명상에 든 적멸의 수행자가 얼굴을 감추고 돌아앉았다. 과거 오오사까라는 일본인 학자가 이 근방에서 신인사(神印寺)라고 명문이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더라. 만약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곳 탑곡은 신라 선덕여왕 때 활약한 밀교의 고승인 명랑법사와 관련된 옛 절터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명랑법사는 668년 당군의 내침소식을 듣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낭산 신유림(新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을 것을 건의하였다. 오색 비단으로 절의 모양을 꾸미고, 풀로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세운 후 문두루비밀법(文豆婁秘密法)으로 태풍을 일으켜 당나라 병선을 침몰시켰다.
그는 <금광명경(金光明經)>에 근거해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자기 집에 금광사(金光寺)를 지었고, 뒤에 진언종(眞言宗)의 별파인 신인종(神印宗)의 조사(祖師)가 되었다. 혹자는 명랑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만에 부처바위를 만든 후 자신의 모습을 바위 속에 남몰래 남겨둔 것이라고도 한다. 오늘 같이 햇살 좋은 가을 아침의 축복이 없었다면 바위 속 깊이 잠든 명랑스님의 신묘한 얼굴을 어떻게 마주할 수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