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3일 오후 인천 남구 인하대학교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 참석, '정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뀐다'는 주제로 강연한 뒤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유성호
속된 말로 가장 '섹시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아마도 그가 대선출마를 결심한 이후 가장 전방위적이고 공세적인 비난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23일 인하대에서 진행된 초청강연에서 국회의원수와 정당보조금을 축소하고 중앙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가 여·야 정치인은 물론 학계의 집중 난타를 당하고 있다. 마치 순식간에 반(反)안철수 단일화가 이루어진 모양새다.
이런 비난의 핵심 이유는 '현실정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일본의 국회의원 1명당 국민 수를 비교한 셈법도 잘못되었고, 정당보조금을 축소하면 재벌의 입김만 더 세질 것이라는 비판이다. 게다가 중앙당을 없애면, 대통령에 당선된들 누구와 협의할 것이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타당한 반론이다. 이미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실제 의원 1명 당 국민수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숫자가 결코 많은 것은 아닐 뿐더러, 전문가들 사이에는 오히려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했다. 정당보조금이 줄면, 오히려 재벌의 은밀한 마수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보조금을 주고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이 현실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 같은 소리일지는 몰라도, 지금 정치권이 쏟아내는 반응에 마냥 수긍하기에는 뭔가 불편하다.
국회의원 줄이기, 왜 나왔을까 안철수 후보가 그동안 내놓은 정책이나 주요 의제에 대한 언급을 보노라면, 뭔가 뛰어난 안목이나 기발한 착상, 혹은 특출한 통찰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안철수 바람'은 그의 뛰어난 통찰과 대안마련 능력에서 나온 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전혀 놀랍거나 기발하지도, 심지어 문제의 핵심을 잘 짚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정확하게 국민의 상식 수준에 근거하고 있었다.
어떤 국민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어떤 국민이라도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국민 위에 붕 뜬 채로 존재해온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 된 안철수의 강점이었다. 그동안 그의 발언은 썩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어도 일반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에 존재했다.
이번 정치개혁안 역시 수많은 정치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것처럼 여러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이 현실 정치세력에게 느끼고 있는 불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회의원 숫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 국회가 국민 속에 두 발 튼튼히 딛고 있기보다는 붕 떠 있는 존재라는 것은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각 정당의 계파 보스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과연 개별적인 표결권을 줄 필요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매번 중요한 의제를 둘러싼 여야간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토론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자주 목격된다.
게다가 선거 때가 다가오면 본회의 참석은 뒷일이고 지역으로 내려가 지역구 관리에만 공을 들이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오히려 일반적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이리 저리 바뀌는 일도 벌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국회가 선거 때 표출된 국민의 의사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구성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단순다수투표제를 혼합하는 혼합형을 채택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적은 비례대표 의석수로 인해 단순다수제의 특성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는 항상 소수정당이 얻은 표를 기성 정당이 가로채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