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대회 이후 명동성당에서 열린 사제단 시위(1987년 6월 1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신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군사정권의 야만은 계속됐다. 정의구현사제단 또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1980년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글로 당시 정부가 '무장공비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렸다. 부산미문화원, 김근태 고문사건 등 수많은 시국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 발표와 시국기도회는 이어졌다.
1987년 5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 민주화운동 추모 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는 '정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민주화 시위가 전국 곳곳으로 퍼지자 전두환 정권은 결국 6·29선언을 발표,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다.
이후 벌어진 임수경 방북사건·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새만금살리기 운동 등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은 빠지지 않았다. 2007년 10월 '삼성비자금'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곁에도 그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은 용산참사 피해자와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위꾼'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22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그들을 '시위꾼'으로 만든 유신시대를 회고하며 시국기도회를 연다. 이는 유신선포 40년을 맞아 10월 17일 시작,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는 '유신독재 알리기 위한 집중행동주간' 행사 중 하나다. 이날 시국기도회에는 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의 주역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함세웅 신부가 강론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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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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