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원광대 학생들이 서울 대학로에서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박영준
정읍에서 고교 윤리교사를 하고 있는 원광대졸업생 김윤섭(30·철학과 졸)씨는 학과 홈페이지에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고 인성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대학이 취업률을 근거로 이것을 폐지한다면 진정한 사회 시민보다 취업만이 목표인 자기중심적 사람들을 양성하게 될 것"이라며 학과 폐지 결정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폐지 대상 학과는 아니지만 대학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는 것을 우려해 함께 반대운동을 나섰다는 치과대 학생회장 박영준(22)씨는 "이번 구조조정의 주요 지표 중 하나가 '재정기여도'였는데 이것은 투자한 만큼 이윤이 나지 않으면 퇴출시킨다는 기업 논리"라며 "대학이 기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 예술인들도 폐지 반대 목소리
순수미술학부와 무용학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에 지역 예술인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미술협회 익산지부 회원들은 지난 3월 29일 성명서를 통해 "익산미술협회 구성원 대부분이 원광대 미대 출신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순수미술 4개학과를 취업률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폐지한다면 지역예술문화의 근간을 절단하여 고사시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한국무용협회 익산지부도 4월 2일 성명을 내고 "익산은 무용예술이 매우 낙후되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80년 원광대에 무용학과가 생기면서 훌륭한 교수님을 초빙해 전라북도 무용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면서 "경제적 논리만을 앞세워 폐과를 단행할 게 아니라 선조들의 예술혼을 보존하고 후세에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팎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학교 측은 학내 의견을 수렴해 6개 학과만 폐지하고 8개 학과는 통합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5월 22일 발표된 최종 구조조정안에서 폐지가 확정된 학과는 한국문화학과와 독일문학 언어전공, 프랑스문화 언어전공, 정치외교학, 인문사회자율전공학부, 자연과학자율전공학부 등이다.
이들 학과는 2013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다만 재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전공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보장받고, 교수들은 교양학부로 소속이 바뀐다. 이와 함께 국악전공과 음악전공은 음악과로, 무용전공은 스포츠과학부와 통폐합해 스포츠산업 복지학과가 됐다. 도예, 한국화, 서양화, 환경조각전공은 미술과로 통폐합했다. 이런 수정안으로 '총장 사퇴'까지 요구했던 비난 여론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학교 측이 철학과 폐지를 2년 후 재논의하겠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예술과 기초학문 숨죽이고 취업지도교수제 등 강화 실용학문 외의 인문학과를 대거 통폐합한 원광대에는 '취업지도교수 제도'가 새로 생겼다. 각 과 전공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취업에 도움 되는 요령 등을 세세하게 지도하고,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는 제도다. 또 '취업상담사 제도'를 신설해 단과대마다 취업 전문가가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쓰기, 채용면접 요령 등을 조언하고 있다. 이렇게 취업지도에 '올인'한 결과 1년 만에 원광대의 취업률은 2011년 45.2%에서 2012년에 66.8%로 약 21%포인트 상승했고, 올해 '부실대학'에서 탈출했다.
지난해 원광대와 함께 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된 대전 대전대와 청주 서원대도 학과통폐합을 단행했다. 대전대는 철학과를 폐지해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고, 재학생들만 졸업까지 학점 취득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 국어국문창작학부를 단일학과로 축소하고 정원을 80명에서 60명으로 줄였다. 생명과학과와 미생물생명공학과는 생명과학부로 통합됐고, 사회체육학과와 경호무도지도학과는 체육학부로 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