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17일 저녁 창원대에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연 '언론시민학교'에서 "노동자가 바라본 언론"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뒤 사인해 주고 있다.
윤성효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했던 고공농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2011년 1월 6일 새벽에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만에 내려왔다.
"제가 크레인에 올라간 첫날 엄청나게 추웠다. 어찌나 떨었든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올라가는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데, 사실 '내일 올라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309일만에 내려와서야 실감이 났다. 올라가기 전 결혼했던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내려와 보니 아이를 낳았더라. 땅을 밟았는데 멀미를 심하게 했다. 이전에는 버스를 타도 책을 읽을 정도였는데 지금도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한다. 징역 살고 나왔을 때보다 적응하는데 더 힘들었다."김신 대법관 후보 청문회 때 증인으로 서기도 했던 김 지도위원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의 현실을 하나도 모른다. 진심으로 모른다. 국회의원들이 만든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문제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진짜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리해고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발레오만도 등 여러 기업들이 그랬다. 정리해고․구조조정은 경영상 불가피한 것이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쌍차도 경영과 상관 없었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나지 않았느냐. 지역에서 중심적인 노동운동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9년 전 오늘(10월 17일)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 129일간 매달려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려오면 교섭하겠다고 했던 자본은 김 지회장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2주일만에 곽재규 노동자가 도크 바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두 명이 죽고 나서야 한진은 정리해고 철회를 했다. 그 때 대자보를 붙이고 있으니 지나가던 학생이 보고 '다른 회사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 민주노조는 임금 몇 푼 받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 자체가 목숨이다.이전에는 현장 노동자들이 관리직한테 이유 없이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다.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민주노조다. 그 때부터 관리자들이 우리한테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다. 김씨․박씨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민주노조를 어떻게 포기하나. 민주노조를 포기하는 순간 이전의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간다."김진숙 지도위원은 "쌍차와 한진의 정리해고는 노동자한테 절박했다. 대부분 사원아파트에 살았는데, 정리해고가 되면 그야말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아파트에서도 쫓겨나는 것"이라며 "그렇다보니 사측이 하는 온갖 회유와 압박에 넘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복귀? ... 선별복귀 우려"그는 "한진은 수주가 되지 않아서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다. 영도조선소는 4년간 수주 한 척 하지 않았다. 수주 담당 상무가 조남호 회장의 아들이다. 수주를 못해서 경영이 어려우면 수주 담당자를 잘라야 하지 않나. 우리는 용접한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85호 크레인 농성이 계속되고 있을 때 김여진과 '날라리'들이 찾아왔던 일과 희망버스 등에 대해 설명한 그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등 약자들의 삶을 보면 된다"며 "국민소득 2만, 3만 달러면 뭐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자 94명에 대해 11월 10일 복귀시키겠다고 했다. 마치 축제인 것처럼 하는데, 아니다. 사측은 민주노조를 깨는 게 우선이다. 재교육을 보내든지 휴업을 보낼 것이라 본다"며 "아니면 민주노총 탈퇴 조건으로 선별복귀할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잠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