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렉산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알렉산더의 말발굽, 아케메네스 유린... 샤푸르, 로마황제 무릎 꿇려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통일하고 마침내 BC 330년 동방원정에 나선다. 당시 페르시아 왕은 다리우스 3세였지만,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알렉산더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지금 카스피해 연안의 박트리아로 도주하고, 알렉산더는 페르세폴리스로 진입한다. 이로 말미암아 이 신성한 도시는 초토화되고 결국 땅속으로 파묻혀 그후 2천 년간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알렉산더 사후 페르시아는 그의 부하 장군 셀레우시드에 의해 통치되어 헬레니즘 페르시아 왕조가 한때 만들어진다(이것은 BC 162년까지 지속됨). 그러나 이 시기 페르시아 이곳저곳에서는 끊임없는 반란이 일어난다.
헬레니즘 페르시아기에 페르시아의 북쪽에는 파르티아 왕조(BC247~AD224)가 들어선다. 이 왕조는 카시피해와 아랄해 사이에서 만들어져 점점 세력을 뻗쳐 BC 2세기 후에는 과거 아케메네스 제국의 페르시아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게 된다. 이 제국은 로마와 경쟁 관계에 들어가며, 이 시기에 페르시아의 건축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페르시아는 서기 3세기에 이르러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화가 다시 살아난다. 그 주인공이 바로 사산왕조다. 이 왕조는 바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근거지인 파르스를 중심으로 서기 224년에 아데쉬르 1세의 영도하에 강력한 왕국을 만든다. 이 왕국은 241년에서 272년 사이에 아데쉬르의 아들 샤푸르 1세에 이르러 최번성기에 들어간다.
샤푸르는 박트리아 지역을 손에 넣고 드디어 로마와 경쟁한다. 그의 군대는 서기 260년에 에데사에서 로마군을 격파하고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한다(이것과 관련된 그림이 뒤에서 보는 페르세폴리스 근처 낙쉐 로스탐의 암벽 부조이다). 로마사에서 황제가 적의 포로가 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일 것이다. 한편 이 왕국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발전시킨다. 역사가들은 이 왕조를 제2차 페르시아 통일 제국이라 부른다.
서기 7세기 이후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의 성장은 결국 페르시아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들 세력은 동진을 거듭하면서 사산 왕조를 무너뜨린다(637년). 우마야드 칼리프는 페르시아를 복속시키고 이어 8세기 중엽에 이르러 아바스(Abbas) 왕조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강화한다. 이 시기 이슬람 문화는 페르시아 전역을 지배한다. 페르시아는 이후 왕조가 달라지더라도 이슬람의 영향은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11세기가 되어 또 다른 이민족인 셀주크 터키에 의해 지배된다. 1051년 셀주크 터키인들은 이스파한을 점령하여 그곳을 수도로 정한다. 11세기 중반이 될 즈음에는 이들은 현재의 시리아, 이라크, 인도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다.
13세기에 이르러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는 유라시아 전역을 손에 넣는데, 이때 페르시아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페르시아도 칭기즈칸 대제국의 일부가 된 것이다. 몽골은 페르시아를 칭기즈칸의 손자인 훌라구에게 내주어 일한국을 세움으로써 통치케 한다. 이 기간 중 몽골인들은 페르시아의 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역사문헌을 훼손한다. 한편 14세기 말에는 몽골 왕국의 분파로 볼 수 있는 티무르 왕국이 세워진다.
페르시아의 후예, '세계의 절반' 이스파한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