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발선처 비 - 울산 시내에서 북향하여 정자에 닿으면 북쪽으로 포항, 서쪽으로 경주에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경주 쪽으로 좌회전하면 100미터도 안 간 지점에 도로 왼쪽으로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이 유포석보 유적이고, 그 언덕 위에 박제상 관련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만진
그래서 신라 때부터 이 마을 뒷산에는 돌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그 작은 성을 '석보'라 하는데, 유포의 것이기 때문에 '유포 석보'가 되었다. 지금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 비석이 세워진 곳은 유포석보 중 가장 낮은 지점인 셈.
도로변에서 50보 떨어진 작은 언덕 위 유포석보 하단에 올라 '왜에 사신으로 가는 박제상의 배가 처음 출발한 곳'이라는 내용의 비석을 매만지며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문득 박제상이 처참하게 죽고만 대마도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대마도로 한번 떠나볼 것인가? 강풍에 출렁이는 동해의 파도가 오늘 따라 유난히 마음을 짓누른다.
까치와 함께 동해로 들어온 탈해왕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 한 척이 와서 닿는다. 수로왕과 백성들이 북을 치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는 계림(鷄林) 동쪽 아진포(阿珍浦,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로 달아났다. 혁거세왕의 고기잡이 할멈인 아진의선(阿珍義先)이 바다 복판에 까치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 울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기는 바다 가운데에 본래 바위가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까치들이 모여들어서 울고 있을까?"
알고 보니 그것은 바위가 아니라 까치들이 온통 뒤덮은 배였다. 배 안에는 궤짝이 하나 있었다. 까치들은 그 궤짝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진의선은 배를 끌어당겨 숲의 나무에 매어 놓은 다음 궤를 열어 보았다. 궤 안에는 단정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또 갖가지 보석들과 많은 노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7일 동안 사내아이를 잘 대접했다. 그제야 사내아이가 말을 했다.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오, 부왕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 왕녀(王女)로 왕비(王妃)로 삼은 지 오래 되어도 아들이 없자 기도를 드렸는데 7년만에 커다란 알 한 개를 낳았소. 불길하게 생각한 대왕은 '인연이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라'고 빌어주며 나를 배에 띄워 보내었소.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였고, 지금 이곳에 도착한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