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에 얽힌 추억

등록 2012.10.15 11:55수정 2012.10.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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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유독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좋아하게 된 이유도 여러 가지입니다. 입맛에 맞아 좋아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것 말고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음식이 정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꾸라지 요리를 좋아합니다. 소중한 추억 때문입니다.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어는 '추(鰍)'가 있습니다. '미꾸라지 추'자입니다. 그런데 미꾸라지를 뜻하는 원 한자는 '추(鰌)'였습니다. '물고기 어(魚)'에 '두목 추(酋)'자를 합해 만든 글자입니다.


미꾸라지를 물고기의 두목, 즉 대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고기 전체를 놓고 볼 때 미꾸라지는 힘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하는 역할을 볼 때에 중간 아래 쯤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런 미꾸라지에게 '두목 추'자를 붙여 주었으니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도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살짝 '가을 추'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고기 어(魚)'에 '가울 추(秋)' 한결 어울리는 글자 조합입니다.

제겐 미꾸라지 요리에 대한 추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렸을 적, 정말 어렸을 적 추억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뒤니까 초등 저학년 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이야기가 됩니다. 저희 시골 마을엔 30여 집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농촌이라기보다 산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전기불도 들어오기 전이고 차 구경도 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따뜻한 곳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던 마음입니다.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밥물로 쓸 정도이니 얼마나 청정한 지역인지 알 수 있겠지요? 같은 또래의 사내 아이 다섯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겨울 한 철 빼놓고는 늘 벌거벗고 물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내는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그곳에서 잡은 물고기 중 미꾸라지는 우리의 좋은 주전부리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미꾸라지를 냄비에 담아 간장과 고춧가루를 뿌리고 지져서 먹는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맛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 정도이니까요. 그 맛이 미꾸라지를 우리와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요리를 특별히 잘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것을 눈여겨 봐둔 덕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잡은 미꾸라지의 전문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그 고향 마을이 아직 제 감성의 풍성한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미꾸라지에 얽힌 두 번째 추억은 제가 한 여성을 사랑할 때 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5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은 고생을 사서 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개인의 안일을 내려놓고 사회 개혁에 헌신하는 일은 보기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도 인간의 본능은 피할 수 없었던지 저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화장기 없는 얼굴, 거기에 단발머리 아가씨가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은 '행복'이란 단어를 난생처음 구체적으로 그리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때 우리 두 사람이 자주 찾은 곳이 단체 사무실 근처 추어탕집입니다. 풍부한 야채에 갈아 넣은 미꾸라지 고기가 감칠맛 나게 씹히는 그 맛은 저의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거기에다 계피 향은 미꾸라지와 배합되어 특유한 향기로 코를 스쳤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서 나는 장미향보다 더 로맨틱하게 여겨질 정도였으니까요.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그곳에 가서 추어탕으로 요기를 하고 찻집으로 옮겨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추어탕이 우리 두 사람을 연결해준 매개역할을 한 셈입니다. 우리가 추어탕을 얼마나 자주 찾았는지는 결혼식 때 추어탕집 주인 내외가 문을 닫고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식장까지 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 그곳이 많이 변해 있고, 그 추어탕 집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지만 결혼을 하고서도 한동안 그 식당을 이용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면서 추어탕에 대한 생각을 접고 있었습니다. 추어탕은 요리가 중요한데, 자칫 잘못하면 비린내가 나고 미꾸라지 뼈가 목에 걸려 불편한 식사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추어탕 집은 있어도 발길이 잘 닿지 않습니다. 어제(10월 14일)는 주일입니다. 저희 교회 성도 중 한 분이 아침 일찍 전화를 해왔습니다. 추어탕을 끓여 갈 테니 공동식사 국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루 전 미꾸라지를 많이 잡아 왔고, 그것을 나누어 먹고 싶어 교회 공동식사 국으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예배 뒤 전체 성도가 사택에 모여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다른 반찬보다도 추어탕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어릴 때 먹은 미꾸라지 요리 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또 연애시절 계피 향 나는 그 로맨틱한 추어탕 맛을 다시 음미해 볼 수 있을까?

모두들 맛이 좋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채가 많이 들어가 탕이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음식에 까다롭고 민감한 사람들도 예외 없이 맛있게 추어탕을 먹었습니다. 저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어릴 때 먹은 미꾸라지 찜에 연애 시절 먹은 추어탕을 더한 맛이라고. 추어탕을 먹으면서 나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맛있는 것을 내 입으로 가지고 가려는 마음은 동물들에겐 본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 인간은 그것을 나누어 먹을 줄 아는 이성을 가졌다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다릅니다. 추어탕을 듬뿍 끓여 와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그 마음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더 돋보이는 시절은 사회가 그만큼 야박해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한 성도의 사랑과 정성으로 오래간 만에 먹은 추어탕에서 저의 인생 역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과외의 수확입니다. 이 가을에 이런 수확은 저를 기쁘게 만들어서 좋습니다.
#미꾸라지 #추어탕 #연애시절 #공동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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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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