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7월 4일자 <경향신문> 어린이 페이지에 실린 '새마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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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박비어천가'가 절정을 이룬 해는 1979년이었다. 그 해 새마음봉사단이 전국 각 도 단위는 물론 각 면에까지 지부 단위로 구축됐으며, 그 조직은 다시 불교계, 중·고·대학생, '구로공단'이나 버스안내원 등 노동자, 두산·현대 등 재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핏줄'에 침투를 끝냈다.
동시에 1979년은 언론사 사장들이 청와대에서 박근혜의 새마음운동에 대한 협조를 '다짐'한 해이기도 했다. MBC·KBS·TBC 등 방송사는 물론 <경향> <조선> <중앙> <동아> 등 서울 일간지, <합동통신> <동양통신> 등 통신사, 전국 지방지 등 새마음봉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사장님 숫자는 무려 27명에 이른다. 이렇듯 1979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박비어천가'가 절정에 이를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 조짐은 그 해 2월 새마음갖기 범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물가안정 범국민대회를 통해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힘을 합쳐 근검·절약·저축으로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자'는 이 대회를 두고, 신문들은 앞다퉈 사설을 통해 사실상 박근혜를 찬양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소비자 운동의 새 차원'이란 제목으로 "새마음갖기 범국민운동본부가 구체적인 소비자보호 운동의 밑바탕이 되는 소비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새로운 결의를 촉구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으며, <매일경제> 역시 "물가고는 소비자에게도 책임 있다"면서 "(이들 단체가) 물가 안정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고 나선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형광등 100개 켜 놓은 듯한 아우라"에 비견할만한 '박비어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