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친환경 쌀 작목반과 한살림 서울 북부지부 소비자들 간의 도농교류 한마당
오창경
시골 마을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푸른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았던 논들이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때이다. 노랗고, 누런, 노르스름한... 세상의 모든 노란색을 동원한 듯한 벼들이 펼치는 향연이야 말로 시골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태양은 시골 마을의 들녘에 더 선명한 유채색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들녘은 친환경으로 벼를 재배하는 곳이다. 지난 6일 만지리에는 도시 사람들을 초청해서 시골 마을의 자원인 친환경 논에서 메뚜기도 잡고 농사 체험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지리가 친환경 논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1999년부터 혼자서 외로이 친환경 농업을 실천한 신승길(52세)씨 덕분이다. 3년 전부터는 만지리의 거의 모든 논들이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면서 만지리는 친환경 마을이 되어버렸다. 만지리에서는 한 살림 공동체와 손을 잡고 생산하는 모든 쌀을 납품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돈독한 관계를 쌓아왔다.
자외선을 충분히 쐬지 못해 창백해 보이는 서울 아이들이 포충망을 손에 들고 버스에 내리자 만지 마을도 황금빛 들녘처럼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만지 마을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어느 새 논으로 들어가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메뚜기인지 메뚜기가 아이들인지 모를 정도로 도시 아이들은 메뚜기 잡기에 푹 빠져버렸다. 메뚜기 잡기 체험이 너무 재미있어서 벌써 세번째 참여하면서 친구들까지 데리고 왔다는 한 아이는 순식간에 서너 마리를 잡아서 메뚜기 잡기 고수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시골에 사는 우리 아이들도 논에서 메뚜기를 직접 잡는 일을 해보지 않았다. 그 것은 도시 출신인 우리가 메뚜기를 잡아서 간식으로 먹는 '정글의 법칙'에 나올법한 일을 해봤던 어린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병만이 머나먼 정글에 까지 찾아가서 생존 체험을 해내는 원동력은 아마도 시골에서 메뚜기를 잡고, 다람쥐를 쫓고, 진달래를 따먹고 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농촌 체험 행사에 참가한 도시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고 덤으로 청개구리와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을 직접 만지고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자연을 즐기는 법을 터득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온, 시골을 글로 배웠을 도시내기 엄마들이 오히려 청개구리 한 마리에 소리를 지르며 피해 다녀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벼에서 쌀이 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벼 수확 체험이 진행되자 마을 어르신들이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을 자제시키자 아이들이 더 해보겠다고 떼를 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어릴 적 농촌에서 살았던 노부부는 추억의 낫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도 했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농기구들인 홀태, 수동 탈곡기, 풍구가 어느 집 뒤뜰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만지 마을 광장으로 불려 나와 있었다. 홀태라는 농기구는 벼의 열매를 줄기로부터 훑어 내는 기구이며 좀 더 발전된 형태의 농기구가 수동 탈곡기이다. 아이들이 농기구를 체험하는 동안 구경을 하던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들더니 추억의 한 마당이 펼쳐졌다.